이가 아프면 걍 치과에 가면 되는데 좀 참으면 혹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희망에 뭉기적거리고 만용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미루다 어제 구겨진 용기를 펴고 드뎌 치과에 갔습니다. 긴 연휴동안 나처럼 이빨땀시 고생한 사람이 많았던지 대기실에는 기다리는 환자가 많더군요. 근데 고맙게도(?) 정작 의사는 안보였어요.
간호사 말이 원장님께서 금방 오실거라 합니다. 내심 빨리 보고 싶은 사람은 아닌지라 오든 말든 느긋하게 차도 한잔 마시고 스맛폰도 주물럭거리다가 신문쪼가리도 보고 있는데 의사가 헐떡거리며 들어오는데 공이라도 치고 온 듯한 복장입니다. 지각해서 미안하다는 눈짓으로 환자들에게 품위있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고 진료를 보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기다리지 않던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세요?” “어금니 하나가 보름전부터 시리고 아파요.”사진을 찍어보더니 아픈게 당연하다며 신경치료를 하겠답니다. “아버님~쪼매 따끔 하실꺼예요오~”하고 마취주사를 놓더니 입을 한번 헹구라고 합니다. 나는 속으로 지하고 나하고 나이차가 그닥 나지 않는데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별로 맘에 안든다고 생각하는 차에 입을 앙 벌리라고 해서 눈을 찔끔 깜았습니다.
사실 이빨치료 첨 해보는 거 아닌데 그거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던데 어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아팠습니다. 나에게 어제처럼 이빨치료 고문을 하면서 이실직고하라고 다그치면 없는 잘못도 만들어서 술술 다 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네요. 하지만 아무리 아파도 입안에는 전동 드릴인지 함마드릴인지 알 수없는 것이 윙윙 돌아가고 있는 처지라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일어나서 의사를 때려눕히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걍 죽었다 하고 참았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의사에게 아파 죽는 줄 알았다고 하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는 듯 아팠냐고? 아프면 왜 아프다고 말을 안했냐고 하네요. 내 참...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습니다. 간호사가 옆에서 마취주사 한번 더 맞고 했으면 괜찮았을텐데 해서 가만 생각해보니, 경애하는 우리 원장 선생님께서 오후 진료시간에 지각한 뒤 마음이 급해지셔서 마취 주사놓고 마취약이 퍼지기도 전에 번개 치료를 하신 것 같네요. 과연 진료비를 계산할 때 쯤 되니 그제사 한쪽 볼때기가 삶은 수육덩어리처럼 무지근해지더군요.
수년 전에 서울에 있는 모치과병원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의사가 시술을 하면서 계속 아프면 말씀하세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하고 친절하게 해줬는데,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물론 그때도 입안에 전동드릴이 윙윙 돌아가고 있었기에 설사 쫌 아팠더라도 아프다는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참 편안하게 시술을 받았었네요.
신경치료는 끝날 때까지 서너번 더 오랍니다. 내일 또 가야하는데 낼은 주머니에 몰래 38구경 총을 한자루 숨겨가지고 갈까 합니다. “손들고 꼼짝마~ 마취 될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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