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함양의 후원으로 얼짱 한국사 탐험 2부 연재를 다시 시작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매주 기다리며 재미있게 읽어주시던 주간함양 애독자, 역사 애호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뜨거운 성원 기대합니다. 빨리 시작하라우- 뭔 말이 많은 둥! 이성계(우군도통사) : 원래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치는 것이 전쟁의 상식 중에 상식인데 작은 나라가 큰 나라 명(明)을 친다는 것은 어리석지 않슴메(以小逆大)? 바보천치가 아닌 바에 이기지 못할 전쟁을 와 먼저 나서서 시비 거는 둥? 또 여름 농사철에 농민들을 군사로 모아 전쟁터에 다 끌어 가버리믄 농사는 누가 짓고 백성은 장차 뭘 먹고 살라는 둥(夏月發兵)? 기게 다 옳지 않은 그릇된 병법임네. 최영(팔도도통사): 별이 다섯 개인 장수 돌침대 아니 총대장인 나한테 지금 반항하는지비? 개소리 말고 선봉 별똥부대로 선정됐스믄 요동땅으로 날래 달려가 명나라를 치지 못하갓서! 무신 개소리가 이래 많은 둥? 이성계 장군: 세 번째 이유는 나라의 모든 병사를 동원해 북쪽으로 원정을 가믄 일본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타서 남쪽을 침범할 염려가 있지 아니비?(擧國遠征, 倭乘其虛). 그러고설라무네 명나라와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네 번째 이유로는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므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시달릴 염려가 있슴메(弓弩膠解,大軍疾疫).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은 그래서 전쟁을 돌같이 보고 명나라를 치라고 나를 요동땅으로 내보내고 있슴메? 최영 장군: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알 것 임메. 싸우라면 싸울 것이지 뭔 소리가 많슴메! 공격하라우!우왕과 최영장군은 서경(평양)에 있고 5만 군사를 데리고 먼저 질질 앞서가던 이성계 장군은 압록강 위화도에 다다랐다. 장맛비가 14일째 내리고 이제 한발자국만 나아가면 중국의 요동땅이다. 한참 잘 나가는 명나라와 싸우면 모가지 날아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개죽음을 할 것인가? 한낱 명분과 오만으로 죄 없는 이 많은 농민 군사들을 죽음에 처박아야 한단 말인가? 몇 날의 고민 끝에 이성계는 기상천외의 말을 외쳤다.“말머리를 돌려라! 우리는 개경(개성)으로 회군한다!” 이성계는 마침내 4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우고 위화도에서 회군했다(1388년5월2일).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끈 반란군은 개경을 함락시키고 우왕과 최영을 사로잡았다. 명나라를 공격하라고 보냈더니 회군하여 왕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다. 왕은 폐위되고 최영 장군은 유배 후 처형되었다. 신진사대부의 힘을 얻은 이성계는 실권을 잡고 새나라 조선 건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개국을 도와준 공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운명적으로 만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었다. 젊은 개혁가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은 탄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선 왕조는 이성계가 꿈꾼 것이 아니라 정도전이 꿈꾼 나라였다. 위화도 회군이 있기 전 1384년(우왕 10년) 이성계와 정도전이 처음 만났다.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정도전이 여진족 호발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함경도에 있던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가 만난 것이 조선왕조를 세우는 첫 만남이었다. 여기서 이성계의 군대를 살펴 본 정도전은 이성계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해 줄 힘 있는 사람임을 확신했었다. 고려 말 북방에서는 홍건적과 여진족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여 심지어 왕이 나주까지 피난하는 어처구니없는 때가 있었다. 남쪽에서는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이에 신흥무인 최영이 홍산대첩에서,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최무선이 진포대첩에서, 박위가 대마도에서, 정지가 관음포 대첩에서 적을 물리침으로서 백성들은 이들을 하느님처럼 떠받들었다. 강력한 군사권을 가지고 백성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넓혀가는 이들을 신흥무인세력이라고 부르는데 이성계는 이렇게 군사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한편 성리학을 배운 젊은 관료들 사이에서는 권문세족의 썩은 정치에서 고려사회를 개혁하려는 신진사대부들의 비판세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고려 왕조를 고수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온건 개혁파에는 정몽주, 이색, 길재가 있었고 고려 왕조를 부정하고 새 왕조를 꿈꾸는 역성혁명파에는 정도전을 중심으로 조준, 권근 등의 야심찬 학자들이 있었다. 위화도 회군에서 정권을 잡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급진 개혁파는 마침내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세운 후 과전법을 실시하여 권문세족의 경제기반을 무너뜨려 새 왕조의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했다(1391년). 이에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함경도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는 새 나라 ‘조선(朝鮮)’을 건국하고(1392년)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기에 이른다. 조선이라 이름 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였던 단국조선의 고조선을 잇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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