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는 재미있기가 한이 없다. 지난 여름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값 비싼 월급을 받고 방학은 맞은 듯 한없이 놀더니 미안해서 그런지 철이 들어서 그런지 요즈음은 보기 드물게 밤낮을 쉬지 않고 국회에서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피를 토하듯 열변을 토하고 있다. 갈증이 나거나 피곤하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배가 고파서 조금이라도 말을 끊거나 자리를 뜨면 그 사람의 발표는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모처럼 차지한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하여 UFC 격투기처럼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끝판을 달리고 있다.
필리버스터란 국회에서 소수파 의원들이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질문 또는 의견진술이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장시간의 연설, 규칙발언의 연발,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및 그 설명을 위한 장시간의 발언 행위 등이 있다.
이러한 법이 있는지 조차 몰랐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법이 있어 지금 국회는 모처럼 호기를 맞아 두 번째 필리버스터가 시험 가동되고 있다니 이 얼마나 흥미 있는지 모르겠다. 소수당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의 방법으로 합법적 저지 활동으로서 무제한 연설이 진행되고 있다. <테러 방지법>을 놓고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여당은 ‘통과 시켜라.’ 이고 야당은 ‘안 된다.’ 이다. 더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24일 오전 2시 30분부터 12시 48분까지 무려 10시간 18분 동안 반대 연설을 하여 ‘김대중 구속동의안 반대’ 필리버스터 기록을 깼다니 놀랄 만하다.
마지막 주자로 2일 피날레를 장식한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시간 31분’으로 기록을 다시한번 경신했다. 헌정 사상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나라가 온통 법석인지 주제나 알자. 테러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놓고 싸우고 있다. 야당은 감청, 계좌 추적, 감시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정원에 그 권한을 주면 무소불위의 위험이 온다는 것이다. 여당은 국가 안보의 테러이기 때문에 국정원에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일이니 잘 생각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은 가장 작은 것이라도 버리거나 짓밟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생명에게 준 자유이자 마지막 존귀이기 때문이다. 3월2일 필리버스터는 9일 만에 끝났다. 별 득이 없었던지 아니면 선거법 처리 때문인지 야당이 물러섰다. 계속하면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리스에 가면 아크로폴리스 언덕 가기 전에 ‘아고라 광장’이 나온다. ‘아고라’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기도 했고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세간의 관심사를 놓고 정치 경제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는 고대 그리스의 열린 광장이기도 했다. 누구나 말하고 싶은 사람은 차례대로 연단에 서서 듣거나 말거나 말하면 되었다.
우리 함양도 오일장에서 아고라 광장처럼 ‘행복한 함양은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나?’를 놓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 말해 보도록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의 광장을 열어 놓아 보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정쟁의 싸움이 아니라 함양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놓고 끝없이 토론을 하다 보면 행복의 공통된 어떤 것들이 추출되어 함양이 해야 될 버킷리스트도 작성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열린사회는 누구나 쉽게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제도적 열린 광장이 있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나와 하루고 이틀이고 함양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코피 터지게 밤을 새며 끝없는 무제한 토론을 해주길 바란다. 필리버스터 꽤 호감이 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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