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밭에 거름을 주려고 나서는데 바람이 매섭습니다.우수와 경칩 틈으로 개구리가 나올 듯 말 듯 애매한 날씨. 집을 나서다 차가운 공기에 멈칫,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 던졌던 잠바를 다시 입으려 집에 도로 들어가는데 현관에서 난감한 일을 당했습니다. 현관 잠금장치가 또 말썽을 부립니다. 지난 해 한번 수리했던 건데 그새 헐거워져서 며칠 전부턴 덜거륵덜거륵 소리까지 나더니 마침내 일을 냈습니다. 문을 여는데 젠장 문은 안 열리고 황당하게 손잡이만 뭉치채로 쑤욱 빠져 버렸습니다. 예전에 아파트 살 때는 집안에 이런저런 고장이 나면 관리실에 전화해서 쉽게 해결했는데, 산골 외딴집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참 난감합니다.
나는 원래 공인된 기계치라 ‘어쩌지 어쩌지 문을 잠그고 밭에 가야되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대책없이 발만 동동 굴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직접 고쳐봐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에 붙어있는 부품을 모두 뜯어내어 바닥에 하나씩 펼쳐보니 부품이 모두 스무 개는 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잠금장치 하나가 이렇게 복잡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리라는 거 뭐 별거겠어? 엉뚱한데 가 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집어서 여기가 니 자리야~ 알았지~ 이제 움직이지 마! 하고 잘 타일러 주면 되는 거지. 까짓꺼...)
나는 조그만 부품들을 이리 맞춰보고 저리 짝지어주고 됐다됐다 하면서 현관문에 조립하기를 열 번은 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야말로 열쇄 전문점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길래 이제 봄이 오나보다 싶었습니다. 마당에 비올라가 한송이 앙증맞게 피어 있길래 밭갈이 할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했네요. 이래 쉽게 봄이 올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었지요.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감나무 거름 주러 간다고 장화신고 나섰다가 오전 내내 현관문을 붙들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꽃샘바람이 어찌나 맵게 부는지 눈물이 날 지경인데 잠금장치 부품들은 고집불통입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읍에 있는 전문점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새 잠금장치로 바꿔주겠다는데 출장비까지 견적이 만만치 않네요. 나는 순전히 오기로 다시 한 번 현관문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안쪽 뭉치랑 바깥 쪽 뭉치를 안쪽은 안쪽끼리 바깥쪽은 바깥쪽끼리 차근차근 조립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성공적으로 결합하였습니다. ‘그래 그 까짓꺼~ㅎㅎ 오늘 돈 벌었다.’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문을 닫고 열어보는데, 아이쿠 큰일 났습니다. 닫힌 문이 이제는 아예 열리지가 않아 집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열쇄전문점으로 전화를 하려는데 오기에 오기를 더한 십기가 나네요. 좀도둑처럼 창문으로 겨우 집에 들어가서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신 뒤 다시 잠금장치를 뜯어내고는 안팎으로 분리한 두 뭉치를 하나씩 작동해보며 잠긴 문이 왜 열리지 않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다가 앗싸라삐야~ 찾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네요. 조그만 스프링 하나가 엉뚱한 곳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오전 내내 현관문 쇠뭉치 붙들고 찬바람에 벌벌 떨며 쪼그리고 있다가 작은 성취감과 따끈하게 라면이라도 한 냄비 끓여먹을 생각에 입이 막 벌어집니다. 그리고 문득 ‘내 마음의 문도 스프링 같은 것이 엉뚱한 곳에 끼워져 있어 누군가 문을 못 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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