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도 끝나고 모두들 일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고향 길로 향하는, 먼 거리의 노고에도 가족들을 만나는 설렘과 반가움, 친지들을 만났던 설 명절의 기쁨이 세월만큼이나 가슴 벅차게 전율해옵니다. 설 명절은 음력 새해 첫날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례 음식상을 차려놓고 조상님들을 기리며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세시풍속입니다. 오손도손 혈육으로 맺어진 친척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삶의 이정표를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날은 여느 명절처럼 가족끼리 함께 보내면서 혈연의 가족연대감으로 삶의 활력을 재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우리네 명절날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여행을 간다거나, 아니면 가족 간의 모임을 회피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이는 핵가족화와 가족[가문]에 대한 애착이 많이 사라진 탓도 있겠지만, 가족 간의 불화도 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병>(시모주 아키코 저)이라는 책에서처럼,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베이비부모 세대가 고령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가족의 다양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이 없는 부부, 노년에 이혼하는 풍조,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세태 등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이야기를 통해 농경사회에서처럼 ‘단란한 가족’이 쉽지 않는 시대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도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는 가족은 별로 없습니다. 남의 눈이 두려워 금슬 좋은 부부인 척하고 아이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는 부모도 많습니다. 가족이라지만 혈연의 동질성보다는 각기 흩어져 다른 공간에서, 오히려 이질성이 훨씬 많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타인들입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혈연만을 앞세우다 보니,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가족’ 하면 무조건 같은 편이 되어야 하고, 서로를 위한다는 핑계로 지나친 간섭과 기대가 오히려 가족 간의 상처를 입혀 위화감만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가족 간에 돈[유산]이 얽히면 그렇게 받은 상처들이 불화와 반목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번 설에 TV에 방영된 특선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의 다큐멘터리는 가족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90줄에도 서로 예쁘다고 어루만지며 사는 노부부는 한 번도 싫다는 말, 밉다는 소리, 비난하거나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덕담만 하며 살아갑니다. 동화속의 아이들 같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정자에서 부모봉양을 서로 탓하는 자식들의 속물적인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죽은 다음에야,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에게조차 배려하고 이해하는데 인색합니다. 죽음이라는 형태로 종지부가 찍힌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상대편에게 마음을 열어, 좀 더 대화하지 못했음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가슴 저미도록 후회하게 됩니다. 가족이 가족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더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고, 가족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의 정체성과 실존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뿌리를 알고, 내 분신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내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가족은 삶의 주춧돌입니다. 가족과 가정은 아이들의 삶의 보금자리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모태와 같습니다. 가족의 해체는 아이들의 가슴에 너무도 큰 불신과 상처를 남깁니다. 김건모의 ‘가족’의 노랫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너무 먼 곳에서 행복을 찾고/ 매일 부족해서 힘들어 했었죠/ 몰랐네요 이제야 보이네요/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는 것// 사실 항상 가까운 곳에 있어서/ 아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 줘서/ 고맙다고 말 한마디 못 했었네요/ 당연하게 받기만 했었네요/ 사랑해요 이젠 알아요/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거죠/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보석”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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