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이 생긴지 6~7년쯤 되었다. 처음 지리산 둘레길이 조성되고 그 길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내가 사는 마을 우리 집 앞을 지나가게 되니 이거 참 신기하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했다. 조용하던 엄천골짝 운서마을에 배낭을 맨 둘레꾼들이 하나 둘 지나가기 시작하더니 강호동이 나오는 일박이일에 방영된 해에는 주말이면 둘레꾼들로 동네가 알록달록했다.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해서 이웃이랑 매년 지리산둘레길을 몇구간씩 걷곤 했는데 그동안 걸은 것을 다 합치면 지리산을 몇 바퀴 돌지 않았나 싶다. 마을에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오니 민박을 칠 수 있는 집들은 입이 벌어졌다. 우리 집도 민박 방이 4실 있었는데 주말이면 각 방에 4명씩 16명이 예약도 없이 가득 찼다. 남녀 구분해서 1층에는 남자, 2층에는 여자, 일인당 무조건 만원씩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했는데 이대로만 이어지만 나는 금세 부자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방송효과가 사라지고 나서 둘레꾼이 확 줄어 든 것이다. 어쨌든 둘레꾼이 일박이일 방송 나던 해처럼 많이 지나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사람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 둘레꾼들을 우리마을에 좀 더 머물다가게 하는 방법을 나는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마을 뒷산을 한바퀴 돌아보는 마을 둘레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지리산둘레길도 아닌 제주 올레길도 아닌 엄천골 몰래길. 마을회의에서 정식으로 의논이 되어 마을 이장님이랑 총무 그리고 나 세명이 코스 답사에 들어갔다. 답사일 아침에 마을 뒷산 한쟁이골을 출발하여 공개바위까지 갔다가 능선을 타고 내려오니 오후 두시. 중간 중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약 세시간 거리, 산길임을 감안하면 길지도 짧지도 않는 코스다. 한쟁이골로 올라가는 길은 이미 개통된 지리산 둘레길에 결코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예전에는 이 길을 견마길이라고 불렀다한다. 견마길은 육이오 전쟁후 산판 나무를 져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길바닥에는 나뭇짐을 인력으로 끌 수 있도록 둥근 나무토막이 깔려있었다 한다. 지게로 져다 나르면 한짐 밖에 나르지 못하지만 사다리같이 생긴 긴 지게에 나무를 한번에 다섯짐 여섯짐이나 올려서 질질 끌고 내려왔다는데 그 때는 그게 제법 돈이 되었다고 한다. 그 나무들은 동란 후 부산의 피란민 판자촌 짓는데 사용되었다 한다. 그런데 그 견마길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사람 한사람 겨우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 되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돌배가 떨어져 있어 맛을 보았더니 새콤달콤 기가 막히게 맛있다. 어찌나 맛있던지 내려오는 길에 다시 여러 개 주워 먹었다. 거름을 주고 재배한 열매는 시간이 지나면 썩는데 완전 자연산 열매는 썩지 않고 마르기만 할뿐 달콤한 맛은 갈수록 깊어진다. 반시간 가량 오르니 산죽이 무성해서 걷기가 어려울 정도다. 장정 두 명이 날을 잡아서 산죽 밭에 오솔길을 내기로 했는데 그 가엾은 두 명이 누가 될지? 한쟁이골은 고로쇠나무가 많아 눈이 녹을 무렵이면 마을 사람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 견마길을 따라 한 시간 가량 올라가니 마당바위가 나온다. 예전에 사람이 많이 다닐 때는 바위가 반들반들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니는 사람이 없어 솔잎으로 덮여 있다. 마당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콩죽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에서 콩죽을 끓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데 바위 옆에 앉아 가만 귀를 기울여보니 신기하게도 뽀글뽀글 콩죽을 끓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위에서 우째 이런 소리가 날까 궁금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근처에 계곡이 졸졸 흐르고 있고 바위는 물소리가 공명이 되도록 부채처럼 생겼다.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 하던 공깃돌(공갯돌)을 쌓아서 만들었다는 공개바위에서 도시락을 먹고 능선길로 내려왔다. 능선길에는 온통 도토리가 깔려있어 한번 미끄러지면 청룡열차 타고 마을까지 내려올 거 같았다. 나는 청룡열차를 한번 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돌아오는 표가 없다 해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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