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어 밥 먹기 힘들다고 학교에 나가는 아내가 아침 출근 준비로 부산을 떨면서도 어제 사온 새 옷을 입어보고 있네요. 울로 만든 겨울 원피스입니다. 옷이 날개라고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요래조래 맵시를 보고 있는 아내가 멋져 보여 <당신 그 옷 입으니 올리비아 핫세같네~> 라고 했더니 아내는 <마음에 읍는 말 하지마아~> 하고 여우 눈을 치켜뜹니다. 나는 <진짜야~ 올리비아 핫세보다 더 예쁜데~> 하고 구렁이 눈을 껌뻑거렸습니다. 아내는 새 옷을 입고 날아갈 듯 현관을 나섰다가 금세 다시 들어왔습니다. 올리비아고 뭐고 추워서 안되겠던지 두툼한 패딩잠바로 바꿔 입고 출근했습니다. 무뚝뚝한 내입에서 어떻게 그런 재치있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저녁엔 내가 좋아하는 서더리탕이라도 얻어먹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이방자 나이가 되니 아내가 변했습니다. 평소 아내는 꼭 필요하지 않으면 좀처럼 새 옷을 사 입지 않습니다. 신혼 때부터 검소함의 화신이었던 아내가 요즘은 옷뿐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새것을 계속 사들입니다. 아직 쓸만한데 가전제품에서부터 식탁 같은 가구 그리고 신발, 가방 같은 것들을 새 걸로 바꾸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전제품 같은 것은 한 번 씩 시대에 맞게 바꿔줘야 하고 식탁 같은 가구도 분위기 전환 겸 가구공장 매출도 올려줄 겸해서 한번쯤 바꿔 줄 필요는 있지요. 그리고 좋은 옷도 입어보고 싶고 예쁜 신발도 신어보고 싶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던 것들이었습니다. 지난 봄 아내가 앞마당에 핀 보랏빛 독일붓꽃을 보고 예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같은 색상의 옷을 한번 입어보고 싶다길래 나는 내가 꽃만 예뻐해서 본인이 직접 꽃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농을 한 적이 있는데... 아~ 정말... 그렇네요. 지금 생각하니 그 때부터 아내가 바뀌었습니다. TV 채널 바뀌듯 바뀌었습니다.
그해 봄 기어코 보랏빛 독일붓꽃 색상의 멋진 원피스를 한 벌 사 입더니 스스로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평소 독서가 취미였던 아내는 그 뒤 주말이면 쇼핑을 즐겼습니다. 어제도 진주에 볼일 보러 갔다가 백화점에 들렀는데 아내는 울로 만든 원피스를 하나 골랐습니다. 아내는 결코 싸지 않은 옷을 사면서도 남편의 적극적이고 완전한 동의를 얻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카드결제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써 먹어서 알면서도 넘어가는 고전적인 기술을 하나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매장을 가볍게 돌다가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옷을 구경하며 요래조래 만져봅니다. 그리고 옷은 멋진데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하다고 투덜대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아쉬운 듯 한두 번 되돌아봅니다. 뒤따라 다니던 내가 슬쩍 가격표를 보니 도대체 저렇게 비싼 옷은 누가 사 입을까 싶을 정도로 고가입니다. 가슴이 철렁 아랫배가 불룩... 간이 떨어졌습니다. 나는 아내가 그 옷을 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불안해집니다. 아내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이옷 저옷 구경하지만 고백컨대 나는 다리도 아프고 얼른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지친 나는 아내가 어떤 옷을 골라도 정말 잘 어울리겠다며 바람을 잡고는 본인의 신속한 결정을 기다립니다. 어서 카드를 꺼내고 싶은 충동에 손이 근질근질할 지경이 되지요. 어제는 아내가 울로 된 원피스를 고르길래 그리 비싸 보이지는 않아 얼른 카드를 내밀었습니다.(휴~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도 큰 돈을 절약했구나...)
어쨌든 이방자 나이가 되면 갑자기 꽃이 되고 싶고, 꽃이 되고 싶으면 돈이 좀 든다는 거,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거, 그렇지만 식생활은 오히려 풍요로워 진다는 거, 예를 들어 서더리탕이 먹고 싶다면 어제처럼 올리비아 핫세 운운한다던지, 요즘 잘 나간다는 여배우 이름이라도 암기해두었다가 누구누구 닮았네~ 하고 순발력을 발휘하면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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