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골에 와서 그동안 해오던 이런 저런 농사를 접고 곶감쟁이가 한 번 되어보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곶감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벌에 쏘여가며 토종벌을 치는 것보다,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며 다락 논에서 풀을 메는 것보다, 후덥지근한 비가 자주 내리는 가을날 허리가 아프도록 알밤을 줍는 것보다는 곶감 말리는 일이 훨씬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풍이 절정일 때 가을의 정취를 온 몸으로 느끼며 긴 장대를 들고 맑은 가을 하늘을 가르면서 잘 익은 감을 따 내리고는 마을 할머니들 손을 빌려 감을 깎은 뒤 덕장에 주렁주렁 걸어두면, 지리산 상봉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골짝 바람이 알아서 달콤한 곶감을 만들어 줄 것이고, 나는 겨울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며 곶감 주문을 받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사람 사는 일이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올해는 시월 한 달 내내 감을 땄습니다. 그런데 감나무가 대부분 고목이라 감을 따는 일은 그야말로 끝없이 하늘을 우르르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열흘 가량은 목이 무지 아팠지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열흘이 지나자 목 아픈 게 가셨습니다. 목 근육이 완전히 풀려 목이 자유자재로 훽훽 돌아가는데 키 큰 나무를 아무리 오랫동안 올려다보아도 더 이상 목은 아프지 않고 대신 손목이 부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감을 따느라 손목을 계속 비틀었더니 이번에는 손목이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곱게 단풍들어 떨어진 울긋불긋한 감잎을 밟으며 긴 장대를 들고 맑은 가을 하늘을 가르며 경쾌한 몸짓으로 감을 따는 나의 모습을 그렸었는데...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혹 떨어질까 쩔쩔매며 감을 따 내리는 나의 모습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우스꽝스러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며 따 내린 감이 모두 다섯 동입니다. 한 동은 백 접, 한 접은 백 개이니 모두 오만개.
앞마당 가득히 감을 쌓아놓고 마을 할머니들과 같이 칼을 들었습니다. 감꼭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고 덕장에 감을 하나씩 매다는데... 감을 매다는 일은 끝없이 몸을 낮추는 일입니다. 몸을 숙여 감을 하나씩 집어 들고 일어서서 감을 하나씩 걸이에 매다는데... 그렇게 다섯 동의 감을 모두 달고 나니 마치 고행하는 수행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쉬지 않고 절을 천 번 하는 천배 수련을 예전에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천 번의 절을 하는데 일곱 시간 가량 걸렸던 것 같은데 끝까지 다하기는 했지만 절반 정도하니 무릎이 아파 더는 못할 것 같더군요. 성철 스님 살아 계실 때 그분을 한번 만나보기 위해서는 예외 없이 삼천 배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감을 매달기 위해 수만 번 자신을 낮추어야 했지요.
십이월에 접어들자 골짝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덕장에 매달린 곶감을 살짝 얼렸다가 녹이기를 반복하며 곶감에 단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일찍 매단 먹감은 이제 반건시가 다되어 그저께부터 출하를 시작했고, 늦게 매단 반시도 매일 붉은 색깔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힘든 일을 모두 끝내고 나니 사람 사는 일이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겠지만 못할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몸을 따뜻하게 녹였습니다.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벽난로에 넣어두고는 덕장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곶감을 빼먹는 아들에게 실컷 먹으라고 아예 박스채로 가져다주었습니다.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아내는 책에 빠져 있고 나는 노란 호박고구마 익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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