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세 개가 있는데, 함양 여씨, 함양 박씨 함양 오씨 이다. 고려시대 대장군 이었던 여림청이 임호마을 앞에 묻혀 있는데 바로 함양 여씨의 시조묘이다. 그래서 마을의 다른 이름은 여림청(呂林淸) 또는 임청지(林淸地)라고도 불렸다. 휴천면지에 따르면, 만능무예의 기질을 타고난 임청이 함양에서 고려태조 왕건에게 대장군으로 발탁되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수훈하여 고려 진국대장군으로 함양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부인은 정경부인의 칭호를 받게 되고 여흥 민씨 가문의 세 자매 중 가운데 딸이었다. 이 세 자매는 다 같이 세 장군의 아내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함양에서 뿌리를 내린 함양박씨의 시조인 박실 대장군, 함양여씨의 시조인 여림청 대장군, 함양오씨의 시조인 오광휘 상장군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이 다 같이 삼동서(三同胥)가 되었고, 맏 동서 박실 대장군의 묘는 함양읍 남산뒤, 가운데 동서 여림청 대상군의 묘는 이곳 임호마을, 막내동서 오광휘 상장군의 묘는 유림면 회동마을에 있는데, 각각 함양을 본관으로 하는 세 가지 성의 시조가 되었다. 몇 년 전 함양군의회 의장을 지낸 분과, 현재 대한노인회 함양군지회장도 이곳 임호마을 출신으로, 휴천면에서는 인물이 나는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 함양읍에서 휴천면 방면 군도 3호선을 따라 오면 소재지를 300미터쯤 앞두고 왼쪽 임호마을 입구에 통나무로 만든 버스 승강장이 있다. 어느 봉사단체에서 마을꾸미기 사업을 하면서 솟대와 마을표지판도 예쁘게 세워놨다. 승강장 바로 옆에는 제법 나이가 들었을 것 같은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있어 봄이면 꽃이 만발하여 지나치는 차량 운전자들은 시선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약 300미터 정도의 마을 진입로는 두어 번 휘어지면서 연결되어 있어 도로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 다다르면 바로 길옆 언덕위에는 석물이 죽 늘어선 여씨 시조묘가 있고 그 아랫단에 여씨 제각이 있어 매년 시제(時祭) 때에는 전국에서 온 후손들로 마을이 잠시 북적이곤 한다. 예전에는 묘가 있는 산속을 찾아다니며 시제를 모셨는데, 지금은 대부분 마을주변에 제각이라 하여 관리사를 지어놓고 실내에서 모시고 있으니, 어느 집안 할 것 없이 어른들의 입에서는 참으로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임호마을은 30호 정도의 그리 크지 않고 약간 경사진 터에 있어 마을전체가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마을 중간쯤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면 제법 넓은 들이 나타나는데 10ha정도 되는 화장들(花長들)이다. 남향으로 정좌하고 앉은 모습이라 조망도 좋을 뿐만 아니라 토질이 좋아 이런 들에 논밭이라도 한 필지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화장산으로 가는 안내표지가 잘 되어있어 초행길이라도 2시간 정도면 어렵지 않게 화장산을 다녀올 수 있다. 화장산 너머가 유림면인데, 수년전 대형 산불로 인해 몇 해 동안 산나물과 고사리가 많아, 함양군에서는 도시 자매결연 주민들을 초청하여 산나물축제와 고사리 축제를 한적도 있다. 화장산이 해발 585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앉아있는 품이 제법 넓어 언저리에는 논과 밭이 많고 기름지다 보니 농산물도 풍부하고 산나물과 가을에는 송이도 제법 난다고 하는데, 화장골이라 불려지는 이곳이 남향으로 따뜻하게 앉은 곳이라 그런지 최근에는 귀농하여 새로 지은 집이 5채가 생겼다. 작은 골짜기를 경계로 이쪽이 임호마을 들이 있고 건너편은 휴천면 산두마을이다. 깊지 않은데도 계곡에는 물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조그만 소류지 2개를 가지고 있다 보니 물걱정은 없는 들이다. 간혹 가뭄이 있을 때는 보감독(소류지 관리인)을 하고 있는 김몽수 옹(79세)이 효율적으로 물을 배분하고 있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임호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기골이 장대하여 나이에 비해 지금도 완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불만이 있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가 오랫동안 보감독을 하면서 가장 곤란했던 적은 같은 마을 모 과부 한 사람이 자기 논에 물 안넣어 준다고 수로에 들어가 죽치고 앉아버리는 바람에 난감했던 적이 있었단다. 쌀농사에 목숨을 걸던 시절 농촌지역에서는 흔히 볼수 있었던 광경이었는데,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쓴 웃음을 짓는다. 김몽수 임호마을 노인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더 해야겠다. 그의 애마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영화 터미네이터 주인공 아놀드슈왈츠네거를 꼭 빼닮았다. 젊었을 때는 제법 잘 나갔다는 그가 힘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싸움질도 많이 하고 다녔다며,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는 무용담을 재미있게 늘어놓으신다. 한 번은 진주경상대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은적이 있는데 당시 담당의사가 “자신이 십수년간 숱한 환자를 진료해 왔는데, 이런 통뼈는 당신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딱 2명을 보았다.” 고 하더라며 자랑이시다. 보기에도 힘을 쓰시겠다 싶다. 평생을 농사를 지어오면서 농사에 있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않으려는 고집이 있어, 그가 생산하는 농산물은 모두가 일등품이다. 주체하지 못하게 넘치는 에너지가 잘못 쓰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양군에서는 매년 11월 농업인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데, 농산물 품평회 품목 중 쌀 부문에서 지난해에 이어 금상을 수상한 그는 대상을 받지 못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계신다. 자기가 생산한 쌀이 분명히 1등인데 2등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인가. 잡초 제거도 자신이 직접 하는 등 얼마나 힘겹게 생산한 유기농 쌀인데, 품평회에서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만을 이야기 한다. 다음날 쌀 20kg을 가져오시더니 시식회를 좀 하자는 것이었다. 휴천면 기관단체장님들과 직원들은 밥맛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그가 한말은 “사실은 내가 대상을 받지 못하고 금상이라는 것을 미리 통보받고 행사장에 갈 때 비닐봉지 세 개를 가지고 갔었다. 전시되어 있는 대상, 금상, 은상 받은 쌀을 조금씩 담아와서 농산물품질관리원에 품질의뢰를 할려고 했었다.” 회장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고 있는 작은아들에게 이제 농사일도 물려주라는 주위의 권유에 대상을 받을 때 까지는 품평회에 계속 출품하겠다고 일축하는 김회장의 고집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농산물에 사용했던 농약의 잔류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에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농약제조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농약을 사용하더라도 기준치 이하로 잔류를 하거나 전혀 잔류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농약(농약을 적게 사용), 무농약(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 유기농(무농약은 물론,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음) 농산물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농자재는 물론 노동력도 많이 필요해 자연적으로 생산비가 월등히 많이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가격)를 받지 못하고 있어 농사짓는 사람들로 봐서는 여간 어려움이 아니다. 미국 월가의 귀재라 불리는 투자전문가 짐로저스는 미래산업은 농업이라고 하였다. 식량을 무기로 하는 전쟁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농산물은 대형유통업체의 생필품을 팔기위한 미끼상품으로 끼워팔거나 대폭 할인하여 판매하면서 그 부담은 농가에 지우고 있다. 납품하려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말이다.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면서 품질경쟁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소위 프리미엄급 농산물의 시장은 확대되어 가고 수입농산물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의 농산물 중에서도 상당한 품목들이 우수한 품질을 갖추고 있으니, 제대로 평가해주시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김몽수 회장님과 쌍벽을 이루는 분이 계시니 서두에 소개드렸던 여규상 현 대한노인회 함양군지회장 이시다. 김회장 보다 2살 아래인데, 한 동네에서 어릴적부터 자라면서 비슷한 나이에다 개성이 강하여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고집이 대단하다. 올 3월 다크호스로 선거에 출마하여 당당하게 당선된 여회장은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휴천면 노인회장직을 맡고 있었고, 1980년대 휴천농협장 2선, 함양군의회 초선 의원 등을 역임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분이다. 김몽수 회장과 쌍벽을 이룬다고 표현한 것은 두 분이 맡은바 일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고집이 닮아있다는 이야기다. 올 3월 지회장으로 당선된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하시는데, 농사철에는 새벽 5시에는 반드시 일어나 한나절 할 일을 다 한단다. 식성도 좋으시고 애주가인데다 강철체력이다. 자동차운전을 하지 못하는 여회장의 애마는 경운기다. 매일아침 임호마을 입구 버스승강장 근처에 경운기를 세워놓고 8시40분경에 오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지나치다가 혹시 회장님의 경운기가 안보이면 궁금해져 전화를 드린적이 몇 번이나 있는데, 그럴 때는 출타중이거나 다 사유가 있었다. 지난달 아흔다섯 생신잔치를 해 드린 어머니를 모시는 효자로서도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생신축하겸 찾아뵜더니 그의 어머니께서는 고령인데도 총기가 대단하시고 며느리보다 귀가 밝아 전화는 도맡아 받으시는데 “내가 이집에 전화 교환이다.” 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들이 저녁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녁식사를 하지 않으신단다. 그래서 여회장은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반드시 집으로 전화를 하시는데, 아들사랑하는 어머니와 어버이께 효도하고자 하는 여회장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온다. 여회장님의 자가용 경운기는 머리부분 벨트쪽에 초록색 안전커브가 덧 대여져 있는 제법 잘생긴 녀석이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김몽수회장도 그렇고 두 분다 운전을 배우지 않아 자동차를 운전해 본적이 없고, 주요 이동수단이 한분은 오토바이, 한분은 경운기다. 타고난 부지런함에 남보다 완력이 있다보니 목 좋은 곳 여기저기에 적지않은 농토를 마련한 것도 닮았다. 물론 힘으로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고 부지런하게 노력하여 정당하게 재산을 불린 것이다. 우스개소리 같지만 지금도 이 분들 주머니 안쪽에는 비아그라 몇 알쯤 항시 가지고 다니신다. 경운기와 오토바이가 다르듯이 약주습관을 보면, 예상외로 김몽수 회장이 절대 과음하지 않고 절주를 하는데 비해, 여규상 회장님은 술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술자리에서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심하게 다투는 듯싶어도, 두 살 차이에 대한 예의는 꼭 챙긴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튀어나올 듯 하다가도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피끓는 청년시절부터 인생의 황혼녘까지 오면서 결국에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상생하는 삶의 방식을 체득하였으리라. 임호마을 입구 도로변 왼쪽에 올해 8월에 세운 오누이비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고자 한다. 역시 휴천면지에 따르면 “1587년 봄 함양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함양박씨 문중의 오빠와 누이동생이 조실부모하고 살 길이 없어 오빠는 머슴살이를 하고 누이동생은 담살이와 품팔이를 해서 돈을 벌어 10년후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오빠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동생을 기다리는데 어디에서 “사람살려”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 가보니 잔인한 왜구가 누이동생을 겁탈하고 돈을 빼앗고 무참하게 살해하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오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동생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다 기진하여 자신도 죽고 말았다. 이 가련하고 참혹한 광경을 본 인근마을 사람들이 오누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에 비를 세웠으나, 일제 강점기 왜놈들이 자기네 수치라고 생각해 파손해 버렸는데,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은채 그 터만 남고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다.” 휴천면장으로 부임한 지난해 초 유학자 유기태 옹과 지역 유지들의 간곡한 청에 따라 지난해 8월 내력을 새긴 오누이비를 세우고, 늦게나마 오누이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지나치시는 길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내력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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