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수확 철에 쓴 일기>내가 요즘 감나무 밭에 다니는 것은 주인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님이 감 따는 깍짓대를 들고 나서면 콜라랑 나는 자석처럼 따라 붙는다. 말이 필요 없는 완전자동이다. 감나무 밭에 가면 재밌는 일이 많다. 아침 일찍 가면 고라니와 만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꿩이 코앞에서 솟는 바람에 깜놀. 근데 주인님은 재미없게 종일 일만 한다. 감을 따고 감을 따고 또 감을 딴다. 저래 감 욕심을 부리면 분명 똥꾸멍이 막힐턴디..ㅋ 콜라는 배가 터지도록 홍시를 묵더니 두더지 사냥을 나섰고, 나는 감 밭을 날아다니다가 심심해서 주인님을 도와주었다. 감을 따다가 실수로 떨어뜨리면 내가 즉시 물어다 주는 건데, 첨엔 한두 번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길래 신바람이 나서 개발에 땀나도록 했더니 갑자기 고만 하란다. 침 묻는다고... ㅠㅜ 나는 주인님에게 재미없게 감만 따지 말고 콜라랑 같이 두더지 사냥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꾸가 없길래 그럼 감 던지기 놀이를 하자고 했다. 주인님이 감을 멀리 던지면 내가 허벌나게 달려가서 물어 오는 전래놀이다. 근데 주인님이 여전히 대꾸도 않고 감만 따길래 나는 심통이 났다. 개든 사람이든 산다는 건 논다는 것인데... 우째 이래 좋은 계절에 일만 하는 고얌? 나는 창의력이라고는 개뿔인 주인님 뒤를 따라다니며 치근댔다. 근데 주인님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나랑 달리기 놀이를 하게 된 건, 주인님이 뒷걸음치다가 나한테 걸려 널브러진 홍시위에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고 난 직후였다. 나는 정말 즐거웠다. 주인님은 씩씩거리며 쫓아왔고 나는 딱 주인님이 포기하지 않을 만큼만 앞서 달렸다.
주인님이 귀농한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일을 적게 하고 잘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근로자는 근로 기준법에 따라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되지만 귀농하기 전 대도시에서 자영업을 했던 주인님은 사장님 특별법에 근거하여 하루를 이틀처럼 일했다는데. 일에 지친 주인님은 그 일을 좀 적게 하고 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일거리가 별로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는 거였다. (하긴 살기 불편한 산골짝으로 들어가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는 하지.... 그 정도는 개도 알 수 있는 거지 ...) 주인님은 하루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그릇을 구워 본다든지 산행을 한다든지 하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지리산 골짝마을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산골마을의 삶은 그닥 치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15년 전에 그 생각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 오늘 내가 주인님과 같이 감나무 밭을 달리고 있는 거다. 나는 신이 나서 꼬리를 빙빙 돌렸고, 주인님은 소리 지르며 주먹을 빙빙 돌렸다.<곶감 깎을 때 쓴 일기>곶감 철이 되어 엄천골 곶감쟁이들이 너나없이 곶감 깎고 있는데 주인님은 놀고 있다. (주인님 얼릉 감 깎으세유~ 남들 다 깎고 있는데 왜 그리 탱자탱자 놀고만 있대유?) 나는 지난 번 감 밭에서 달리기 놀이할 때 내가 끝까지 안 잡혀 줘서 삐져서 그러나 싶어 사과의 표시로 애교를 좀 부렸다. 주인님의 어깨에 앞발을 하나 턱 걸치고 입을 반쯤 벌린 채 씨익 웃으며 주인님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그랬더니 주인님이 화가 풀렸는지 말을 해주는데, 사실은 일손이 없어서 감을 못 깎고 있단다. 매년 감을 깎아 주는 아지매들이 모두 두 장 더 주는 양파 심으러 가버렸단다. 그렇게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주인님이 오늘은 감을 제 때 깎지 못해서 새옹지만지 새옹지말인지 되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말이 주인님한테 상당히 좋은 말이라는 것은 얼굴을 탁 보니 알겠다. (일 손을 제 때 못 구해 살았다는데? 그럼 지가 살았지 죽었냐?)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