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노란 들판, 붉은 단풍 등 알록달록한 가을의 색깔은 여행에 딱 좋은 시기임을 알려준다. ‘봄 도다리 가을 낙지’라고 제철을 맞은 낙지를 먹으러 세가족이 맛기행을 다녀왔다. l박2일 예정으로 남해안을 향했다가 북쪽의 임진각으로, 동쪽의 영덕까지 3박4일의 맛집 순례를 하게 되었다. 드문드문 이곳저곳을 들렸지만 거리상으로는 국토를 종단한 셈이다. 외국여행은 큰 맘 먹고 떠나기도 하지만 훌쩍 떠나면 될 것 같은 국내여행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심과 먹거리, 아름다운 풍광,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은 치유의 힘을 얻게 한다. 귀한 쉼을 통해 오래 기억될 추억들을 만들었다. 많은 일들로 지친 삶에 활력과 기쁨을 얻은 것에 감사한다.
11월9일 함양농협앞에서 세가정 6명이 쌍용의 9인승 트리스모에 동승하여 출발하였다. 열시에 출발하여 한시간 남짓 달려 섬진강 휴게소에 닿았다. 휴게소 주차장은 천정이 온통 태양광 열판이 설치되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눈비 올 때는 가림막 역할을 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등 용도가 다양하였다.
고흥 녹동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을 받은 어장 주인 장준석님이 푸짐한 낙지와 쭈꾸미 상차림을 내놓았다. 귀한 해물을 먹을 것이란 생각에 아침을 요기만 한 탓에 낙지 요리를 맛잇게 먹었다. 식후경이라고 소록도를 일주하였다. 연륙교를 건너 소록도의 꼬불꼬불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가을 바다의 낭만 속으로 빠져보았다. 산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단풍객들로 붐비는 반면 바닷가는 늦가을의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인적이 드문 가을 바닷가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 “하얀 파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맛은 가을 낭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소원 동산”에서 마음속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 하였다. 고래섬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풍랑의 일기예보 탓인지 어선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금휴게소에서는 낙지를 먹은 포만감이 여전함에도, 먹지 않고 가면 후회한다고 TV에 소개된 매생이 호떡을 맛보았다.
11월의 해가 짧아 빨리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당초에는 다음 목적지를 영덕으로 하였으나 일행 중 한분이 경기도 양주시의 신광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서울 쪽으로 가자고 하였다. 이번 여행은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욕심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작한지라 일정에 구애받지 않았다.
녹동에서 동두천까지 장장 470여 킬로미터의 밤길을 천천히 가다보니 새벽 1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보이는 것은 어둠이고 정적뿐이다. 스쳐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만 빛냈다. 밤의 긴 시간은 사람을 진솔하게 만든다. 서로의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한다. 이번 여행을 주선하고 있고 운전을 맡은 이형은 귀농인이다. 잘 나가던 건설업자였다. 즐겁게 일했고 자부심도 있었다. 쉰이 넘은 어느 날 남은 인생을 보람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낙향을 하였다. 강이 있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숲이 있는 곳을 찾다가 아무연고도 없는 함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의 집은 마치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처럼 신기함을 느끼게 한다. 세종대왕의 열두번째 왕자인 한남군이 유배되었던 새우섬을 멋스럽게 휘감아 돌아 흐르는 엄천강이 감싸 안은 휴천면 원기마을 언덕바지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아로니아를 재배하고 건너편 지리산 자락이 연출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이어서 이 고장 출신은 엄두도 내지 않는 그런 위치다. 소나무를 정원수로 만들어 산새들의 집을 지어주고 성같은 느낌을 주는 돌축대를 쌓고 그 위에 넝쿨 장미를 심어 담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모과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를 심어 가을이면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다. 밤이 되어 담벽에 설치된 오색등에 불이 켜지면 환상적이다. 너무나 훌륭한 결과 앞에 외경심을 갖게 한다. 개발하느라 고생깨나 했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실제로 그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 온 것은 아름다운 꿈이었지만 현실은 암담하였다. 그들이 발을 멈춘 곳은 마치 벼랑 끝에 와 있는 것 같은 고독을 느끼게 하였다. 얼어붙은 겨울의 한기(寒氣)와 맹렬한 여름의 서기(暑氣)보다 행정관청과 주변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더 힘들게 하였다. 두해를 컨테이너박스에서 지냈다. 한데 날씨가 바깥 날씨인 것을 실감하였다. 황무지가 꽃동산으로 바뀌는 꿈만이 그들 가족을 따뜻하게 해줄 뿐이었다. 풍광에 매료되고 꿈이 있었기에 행복을 보고 이상향을 봤기에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의 집은 별을 보는 데 적합한 장소다. 하늘과 숲에서, 반짝이는 물의 수면에서, 희망의 사연들이 비쳐오는 듯한 느낌이다. 높은 지대라 절로 심호흡이 이뤄진다. 힐링을 할 수 있는 기막힌 길지다. 한 이틀 쉬면서 한약이라도 한 첩 달여 먹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의 건강케어를 위한 숲속의 집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정보화 시대는 고객이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확산에 적극적이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무농약으로 키우는 푸성귀를 한 아름씩 안겨주는 주인의 넉넉한 인심, 비할 데 없이 빼어난 풍광이 입소문나면서 휴가철이면 몰려드는 손님들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여름이면 예약전쟁이 벌어진다. 경쟁중심의 번잡한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도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손사장 가정의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인생살이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단풍처럼 붉게 만들었다. 역경을 이겨낸 참으로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가정이었다. 감사할 것이 많음을 느끼게 하였다.
신광교회는 앞으로 한탄강으로 흐르는 강물이 있고 4층 교회건물과 맞닿은 산은 울창한 숲이 있는 전원교회였다. 인구 20만명의 양주시에 2000여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큰 교회였다.목사님의 교회건축과정을 들으면서 축복을 많이 받으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목사님이 안내한 점심장소는 동두천에서 유명한 숯불구이 명가인 ‘아리랑’집 이였다. 점심식사 후에는 평화의 종을 치기 위하여 임진각으로 갔다. 몇 년 전에 찾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바쁘게 다녀갈 때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보는 것의 차이인지 모른다. 임진각에서 개성까지는 22킬로미터, 서울까지는 53킬로미터의 거리다. 도라산역을 오고가는 차량들이 보였다. 희망과 생명의 땅인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녘땅에도 어서 사랑과 복음이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일행은 ‘평화의 종’을 7번 타종하였다. 양주에 살고 있는 부인 친구가 지금 산정호수의 단풍이 좋다며 하나콘도를 예약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저녁식사는 산정호수 주변에 있는 20년전 KBS ‘맛따라 길따라’ 프로에 소개된 ‘산비탈 손두부’에서 하였다. 손두부 집은 올해 77세의 전분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70세가 넘은 할머니4명이 운영하였다. 다음날 궁예의 비애를 품은 듯 안개 자욱한 산정호수를 떠나 안동으로 향했다. 가을 단풍이 산불 난 것처럼 붉게 타고 있었다. 산자락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양쪽의 단풍옷을 입은 산줄기가 경주를 하듯 도로를 향해 내달았다. 첫날 낚지를 먹은 고흥 녹동에서 어장을 하는 장씨부부가 파도가 심해 출항이 어렵다며 우리와 합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안동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안동역으로 가는 중간에 문경새재아래 문경약돌 한우타운에서 점심을 먹었다. 안동역에서 장씨부부를 만나 저녁은 안동 구시장 골목안 유진찜닭집에서 먹었다. 좌석이 꽉 찰정도로 손님이 붐볐다. 옆좌석의 젊은이 4명이 큰 소리로 쉼없이 떠들어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경상도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다른 지역사람들이 들으면 싸움하는 것으로 들린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옛날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었다.
1978년 경남도청에서 내무부로 갓 전입했을 때의 일이다. 전화를 받는데 얼마나 목소리가 컸던지 이해봉과장이 불렀다. 이해봉과장은 후에 대구시장과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이과장 본인도 목소리를 낮추느라 처음에 신경을 썼다는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전화를 할 때는 옆 사람이 일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목소리를 낮춰 조용조용히 하라고 하였다. 그 이후 목소리를 낮추려고 애썼다. 친구들과 통화하면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얼마동안 목이 잠겨 고생한 일이 생각났다. 밤에는 운전을 맡은 이형이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때 사냥하려 다니면서 2~3개월씩 숙박했던 여관집 주인이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문병 겸 들리자고 하여 청송군 진보면으로 가서 지냈다. 마지막 날은 대게를 먹으러 영덕의 강구항으로 갔다. 마침 11월 12일이 원전(핵발전소)유치에 대한 찬반 주민투표일이라 각기 다른 주장의 현수막이 청송 진보에서 영덕 강구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나붙어 있었다. 동해바다는 남해바다와는 확연히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남해바다는 섬들이 점점이 보이는데 동해바다는 지평선 너머까지 망망대해다. 바다는 역시 동해다. 원래 대게는 영덕보다 울진.삼척이 큰 시장이었는데 영덕군에서 대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대게하면 영덕이라는 명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삼척대게를 홍보하고 나섰으나 후발주자로서의 한계가 있다. 살이 꽉 찬 대게를 먹고 가수 태진아 동생이 운영하는 노래방이 있는 언덕에 올라 강구항을 내려다보았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위해 강구항 확장을 위한 바다매립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번 여행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로 더없이 행복했다. 따뜻한 세상을 향한 불잉걸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얼마 전에 펴낸 나누는 사람, 베푸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부자의 좋은 습관>주인공의 한사람인 조흥래 사장이 함양군장학재단에 오천만원을 희사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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