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곶감 숙성용 하우스를 지으려고 벼르던 차에 중고자재를 이용하여 저렴하게 시공해 준다는 업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이런 건 일도 아니라요. 잠깐이면 해버리죠.” “그래도 맨바닥에 짓는 게 아니고 덕장 2층에서 베란다를 내어 맹그는 거라 좀 까다롭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뇨~ 이런 일은 일도 아니라요.” “좋습니다. 그럼 시간되는 대로 바로 부탁드립니다.” 소개해준 사람이 일 잘한다고 적극 추천도 하고 중고자재를 이용하여 저렴하게 시공한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와 쉽게 업자를 정했습니다. 견적을 내어 달라고 했더니 다 중고자재를 쓰는데 돈도 별로 안 든다고 그냥 알아서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견적을 달라고 하면 내가 너무 쪼잔한 거 같아 보이겠지... 중고자재로 하는 거니깐...’ 이런 건 일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업자는 전문가 냄새가 물씬 났고 믿음도 갔습니다. 우리 큰 아들 또래의 훤칠하게 잘생긴 젊은 친구를 조수로 데리고 왔는데 자기 아들이라며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을 만들어 일을 한다니 더 믿음이 갔습니다. 그 때는 나락을 한창 거둘 때였습니다. 시간되는 대로 바로 시작하기로 했는데 시월이 다가도록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 전화를 해보니 현장이 여러 군데라 바쁘긴 하지만 간단한 일이니 잠시 짬을 내어 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도 보름이 지났습니다. 보름 뒤, 다시 전화를 해서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다른 업자를 알아보겠다고 하니 그날 저녁에 자재를 일부 갖다놓고는 일이 늦어진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열흘쯤 지나서 나타났습니다. “내 바음이 조그 이사하지요. 머이를 다치는 바암에... 이은 금바 하께요...” 발음이 조금 이상한 게 아니라 많이 이상했습니다.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쳐 입원했다가 사흘 만에 퇴원하는 길이라 하네요. 발음도 어눌하고 눈빛도 흐리멍텅해 보여 도무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금방 끝내겠다며 중고철근 자재에 페인트 칠 부터 시작했습니다. “페인트 치하먼 새거이랑 또 가타요...” 정말 중고 철 자재에 칠을 하니 새 것처럼 깔끔해 보였습니다. 페인트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절단공구로 툭툭 잘라내고 용접마스크도 없이 거칠어 보이는 손바닥으로 불똥을 가려가며 베란다를 이어내는데, 불안해 보였지만 전문가답게 일은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흘 만에 하우스를 지을 수 있는 기초 베란다가 완성되었는데, 아뿔사...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기울어도 살짝 기운 것이 아니라 서있으면 몸이 쏠릴 정도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무릎을 구부린 채 한쪽 눈을 감고 찡그린 외눈으로 수평을 볼 때 과연 전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친 게 머리뿐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사하다...분며이 평펴핸느데.....” 약간 기울었지만 사람 사는 집이 아니고 곶감 숙성용 하우스니 그냥 그대로 하면 안 되겠냐는 것을 못들은 척하고 “평평하게 고쳐야죠.” 했더니 한참 고민한 후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작업을 해머 하나로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용접부위를 산소를 불어 분리하고 수평에 맞게 다시 용접하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며 해머만 휘두르는 것을 보고 즉시 마음을 바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곶감숙성하우스니 좀 기울어도 상관은 없겠네요. 그냥 진행합시다.” 일단 곶감 덕장이 무너지는 것은 막은 셈입니다. 나름대로 잘못을 바로 잡으려다 내가 그냥 진행하자고 하니 업자는 체면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잠시 다른 현장에 급한 일을 처리해 주고 오겠다며 도망가더니 함흥차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소개해준 사람에게 다시 알아보니 그 업자는 고물상을 하는 사장님이시라고 합니다. 결코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우째우째하여 공사는 다른 사람이 맡게 되었고 새로 온 전문가는 바닥이 기울었다고 투덜대면서 기울어진 기초위에 기울어진 하우스를 뚝딱 만들었습니다. 이제 곶감은 모두 이 기울어진 하우스에서 숙성되어 나오게 됩니다. 숙성시켜야할 게 곶감만은 아니건만 나는 요즘 아무 생각없이 기울어진 하우스에서 곶감만 숙성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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