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의 다섯째날 남편이 네팔에서 한국호텔을 하는 한국분의 초대를 받아 우린 그곳을 가기위해 큰길까지 걸어 나왔다. 한참을 기다려 타려는 버스는 너무 비좁다 못해 버스 지붕까지 사람이 타고 버스 문에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버스를 탈 엄두를 못 내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앗따르켈에서 택시를 타고 까멜까지 가려면 버스와 택시 둘 중 하나를 타야한다. 하지만 인도에서 오일을 보내주지 않아 차량 10대중 5대 이상은 길에 서 있는 네팔 형편으로 택시비도 이제 부르는 게 값인냥 200루피 하던 택시비를 예사로 1000루피를 달라한다. 깎아서 700루피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한국분을 만나니 남편은 마치 고향 친척을 만난 듯 반가워한다.
모처럼만에 한국식의 식사도 하고, 그곳 호텔 사장님은 산악인인데 산이 좋아 네팔을 자주 다니다가 네팔이 좋아 이제 그곳에 정착한지 5년이 되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오는 산악인과 관광객에게 길안내와 숙식을 제공하고 비행기티켓 등 여행사 역할도 한다는데 남편은 마치 자신도 먼 훗날 네팔에서 살 것처럼 이것저것 여러 애기가 많다.
나도 어느새 한국사람이 다 된걸까? 한국식 식사가 참으로 맛나다. 한국은 식사가 참으로 풍성하다. 네팔은 접시 하나에 밥과 찬이 다 들어있고, 아침식사는 하지 않으며 차 한잔으로 때우기도 한다. 간편하고 그러나 부족하지 않으며 검소함이 있는 네팔식의 식사를 나는 아직도 그리워한다. 그래서 오직 네팔식의 식사만 하고 남편에게만 가끔 한국식의 식사를 내었는데 초대받은 한국호텔에서의 음식은 나의 지난 8년간의 한국생활이 음식까지도 어느새 한국식으로 길들여진 듯 느끼게 하였다.
한국은 네팔에 비하면 부자 나라이고 부족함이 없는, 모든 게 풍족한~ 그래서 차를 타고 가고, 길을 보고, 스치는 차창을 보아도 풍성하다. 지진으로 시름을 앓고 있으면서도 천막보다 못한 움막같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있었는데도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나의 고향 네팔분들을 보면 가슴 한쪽이 너무 무거우면서도 저 마음만큼은 한국사람들이 오히려 배웠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너무나 풍족하면서도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빨리를 외치고, 조금만 성에 안차면 그저 급해지는 한국사람들. 나도 남편과 남편의 삶의 일부에 적응된 탓인지 다섯 살 큰애에게 나도 모르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5개월된 둘째가 울고 보채면 그저 과민반응일 때가 많다. 이곳에 처음 올 땐 꿈의 나라였는데 이젠 그 꿈이 현실이 되었는데 뭐가 이리 허전한걸까?
10일간의 네팔 체류기간이 끝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가족과 헤어질 때 이번엔 울지 않
았다. 세 번을 고향에 다녀오면서 매번 눈물바다를 이뤘는데 나도 이제 온전히 두 아이의 엄마가 된걸까?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느껴본다.
내가 탄 한국행 비행기는 네팔 현재의 오일 부족으로 항공유를 넣지 못해 방콕 경유하여 주유하였다. 부디 네팔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앞날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은 날들이 기다려주길 빌어본다. 네팔새댁 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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