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추수하느라 한창 바쁠 때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서관 주간을 맞이하여 독서와 관련된 시상식이 있는데 우리 가족이 다독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시상식을 한다는 날이 마침 가을걷이 하는 날이라 참석할 수도 없거니와 책을 많이 빌려본 것이 무슨 상 받을 일이냐며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상장이 다 준비되어 있고 또 부상으로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그러시다면~ 뭐...” 하고 슬그머니 말을 바꿔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책을 빌리러 가는 날 별도로 그 상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히히 문화 상품권이라... 이게 웬 떡이야... 이 나이에 공짜가 생긴다고 입이 요렇게 벌어지다니... 정말 민망^&^... 근데... 그게 얼마나 될까?... 열 장쯤 됐으면 좋겠네...)
우리 가족은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시골에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또 TV를 안보니 그 시간에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습니다. 비록 시골 읍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지만 신간이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에 굳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보지 않아도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읽다 보면 책읽기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일이 끝난 저녁 시간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서 채널 돌리며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지요. 시골로 와서 TV 안보는 습관을 들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됩니다. 광고까지 꼼꼼히 보던 신문도 안본 지 몇 해 되었습니다.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과 신문 보는 시간만 잘 활용해도 꽤 많은 책을 볼 수 있지요. 어쨌든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나는 이런 저런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에 상을 받으러 갔습니다. 부상으로 문화상품권을 받으면 아내는 그것으로 외식을 하자고 하고, 아이들은 그것으로 자기들 필요한 걸 사겠다고 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장실 소파에 앉아 관장님과 다과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데 부상을 직접 받은 큰 아들 녀석이 문화상품권이 든 봉투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그 중 두 장을 꺼내어 자기 안주머니에 쓰윽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요 녀석 봐라.... 관장님과 직원이 다 보고 있는데서 민망하게스리... 상품권을 지 주머니에 챙겨 넣다니...) 나는 큰 아들 녀석이 하는 짓이 우습기도 하여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내가 나머지 봉투를 슬그머니 빼앗아 가방에 챙겨 넣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의 미래는 밝다”는 요지의 관장님 말씀을 마지막으로 듣고 집으로 오면서 아내와 큰 아들은 상품권을 서로 챙기려고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한비야~ 그거 엄마가 같이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됐어, 엄마! 두 장은 내가 잘 보관하고 있을께...” 그런데 한 달쯤 뒤에 도서관에서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또 걸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책 읽는 가족 협회’에서 책을 많이 읽는 가족에게 매년 상을 주는데, 우리 가족이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야호~~ 이거 두 번씩이나... 히히 이번에는 내가 상품권을 챙겨야지...) 또 한 번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모두 득달같이 도서관으로 달려갔지요. “한비야~ 이번에는 저번처럼 관장님앞에서 상품권 챙기고 그러지 마라!” 큰 아들은 엄마의 이런 다짐에 이번에도 부상은 자기가 받겠다고 우깁니다. 항상 엄마에게 고분고분하던 큰 아들 녀석은 콧수염이 나기 시작하더니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역시 지난번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나는 관장님으로부터 인기 없는(?) 상장을 받고 부상을 이번에는 작은 아들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번처럼 상품권이 아니고 기념패입니다. 부상을 받는 작은 아들의 손을 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아이들을 보는 나는 웃음을 참느라 볼이 실룩실룩 하고.ㅋ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가 아이들을 다독거려 줍니다. “엄마는 상품권보다 오늘 받은 기념패가 훠얼씬 가치 있어 보인다. 그깟 상품권보다야~” “엄마~ 그래도 나는 상품권이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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