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원피스를 입고 물레방아골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벌써 두 번째 서는 무대였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지만 두 번째가 되니 긴장감도 덜했다. 지휘에 맞추어 연습한대로 노래를 부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느슨해져 있었던 것일까. 엇박자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박자를 놓쳐 버렸다. 당황스러웠다. 소리를 죽이고 입모양만 흉내 내며 열심히 노래 부르는 척 했다. 입모양은 놓쳐버린 박자를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다행이었다. 아무도 박자를 놓친 것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무대를 내려오니 남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딱 걸려버렸어.”뭐가 딱 걸렸단 말인가. 그러고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놓쳐버린 박자를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남편의 휴대 전화기에만 찍힌 것인 줄 알았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이렇게 장면을 잘 잡았느냐는 말에 남편은 전광판에 찍힌 영상을 그대로 찍었다고 했다. 혼자서 입모양만 흉내 내는 모습이 전광판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그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봤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그 모습이 커다란 전광판에 담길게 뭐란 말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합창단원들에게 미안 했지만 그냥 좌우로 머리를 몇 번 흔들고 잊어버려야 했다. 신혼시절 피아노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부터 피아노를 짝사랑하는 주술에 걸려버렸다. 어느새 나는 학원에 등록하여 나이어린 꼬마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날마다 한 시간씩, 아니 두 시간씩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 흐를 정도로 열심히 건반을 두드렸다. 허나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 걸음 주욱 나아가지 못했다. 음악적 재능이 부족했던 것이다.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가슴이 아리하게 아파왔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때로는 피아노에 대한 짝사랑을 멈추고 싶었다. 허나 그것은 그만두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멈출 수 없었던 동화 속 소녀처럼 피아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함양으로 이사를 오고 처음으로 삼삼축제를 구경할 때였다. 마침 합창단이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가곡을 부르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 순간 피아노의 주술이 풀려버렸던 것일까. 피아노보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그러나 음치이고 박치인 내가 어떻게······. 용기를 냈다. 다행히 합창단 문턱은 낮았다. 노래를 못해도 지독한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고백하자면 처음에 나의 열정은 미적지근했다. 그런데 뜨겁지 않던 열정이 뜨거운 열정을 품어내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전염되어 갔다. 지휘자 선생님을 비롯해 반주자 그리고 총무의 열정은 몹시도 뜨거웠다. 그분들은 행사 때마다 온 정성을 다해 무대를 준비했다. 그분들에 의해 나의 열정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10시가 되면 우리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노래를 연습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웠다. 지휘자 선생님의 레슨을 받으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보면 박자도, 음정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연습을 하면 연습한 만큼 마음이 흡족했다. 아, 나는 또다시 노래라는 주술에 걸려버렸다. 다행인 것은 짝사랑이 아니라 주고받는 사랑을 하고 있다. 간혹 지인들이 “시골에 살면 문화적인 생활을 못 누려서 어떡하냐”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시골에서는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합창단이다. 축제가 열리면 축제의 한자리를 장식하는 경험도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귀촌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합창단은 단단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지원이 열악해 지금은 붉은 열정 하나로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곱지 않은 내 목소리를 곱게 만들어주는 합창단이 있어서 참 좋다. 노래 좀 못 부르면 어떠랴. 실수 좀 하면 또 어떠랴. 못 부르면 잘 부르게 노력하고, 실수하면 그냥 웃어 버리면 된다. 그것이 사람 사는 방법이 아닐까. 노래를 쫌 알게 만들어주는 합창단, 인생을 폼 쫌 나게 해주는 합창단. 고맙다, 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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