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맞아야 할 매라면 차라리 빨리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으려고 눈을 질끔 감고 있는데 매 타작은 내 앞에선 사람까지만 하고 끝난다. 무릎까지 치켜 올린 바지를 쓸어내리며 ‘다행이야...이번에도 용케 매를 피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언제까지나 매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에게 신성한 병역의 의무가 있듯이, 튼튼한 대한민국 시골 아저씨, 아지매라면 누구에게나 막중한 주민봉사의 책무가 있는 것이다. 시골 이장 이야기다. 마을에서 2년에 한번씩 새로 선출하는 이장선거에 내가 후보로 거론된 게 여러 번. 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소심쟁이라 이장 후보로 추천이 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양을 해왔는데, 귀농 15년차의 고참 주민이 되다보니 계속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제 한번 하시게~ 우리 마을에 자리 잡은 지도 오래 됐으니 일 한번 하시게~ ’하고 권하는 어르신 말씀에 어차피 한번은 맞아야 할 매라면 차라리 일찍 맞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공석이 된 마을 이장 선거에 후보로 추천받아 바지춤을 걷어 올렸는데, 고맙게도 매는 내 앞에선 사람이 맞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다보니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마을 이장은 말뚝이 많았다고 한다. 한번 하면 같은 사람이 팔년이고 십년이고 연임하는 사례가 많아서, 주어진 임기를 마치면 자리를 내놓고 주민들이 새로운 일꾼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봉사정신이 지나친 어느 이장 각하는 임기가 끝나도 ‘어디 할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바바~’하고 십자가를 내려놓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골 마을 이장이라도 한 사람이 장기 집권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마련이고, 이것은 하루가 달라지는 요즘 세상에 마을의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건 옛날이야기고, 요즘은 장기 집권하는 이장각하는 거의 없고, 마을마다 귀농하는 젊은 인구의 유입으로 이장 선거 때는 경쟁이 치열하기까지 하다. 도시에서 힘들게 살다가 농촌에서 희망을 보고 들어온 혈기 넘치는 젊은 피들이 농촌마을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무거운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시골 이장은 마을의 원로들이 ‘니가 한번 해봐라~’하는 식으로 추천하고 박수치는 걸로 선출되는 예가 많았다. 선거를 하면 후유증으로 마을에 패가 갈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경선을 하게 되면 투표에 참여하는 마을 인구가 한사람의 손가락 발가락으로도 셀 수 있는 수준이라 개표를 하게 되면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백프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형식은 비밀선거이지만 실상은 거수선거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특히 시골은 지역사회고 정과 의리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번 선거에 낙마한 봉대아제가 자기를 찍지 않고 춘만씨를 찍은 등구할매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추천박수 선출방식도 단점이 있어서, 마을 원로인 김심이나 홍심의 눈에 벗어난 사람은 절대로 이장이 될 수 없고, 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이장이 되기는 새터민이 대통령이 되기보다 어렵다. 뻥을 좀 치면 그렇다는 것.ㅋ그래서 공정한 기회를 주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요즘 시골마을은 대부분 비밀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비밀선거로 이장을 선출하고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