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엔 내가 재수 없이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발이 쥐잡기>라는 속담도 있듯이, 바보농부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진공청소기를 내가 수천 번 수만 번 다 피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 위험한 건 저 바보가 눈을 질끈 감고 휘두른다는 것인데, 만일 눈을 똑바로 뜨고 나와 대적한다면 절대로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겁먹은 바보의 얼굴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조심 또 조심해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나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마당에 있던 코시라는 멍청한 개가 들어와 바보와 팀을 만들어 나를 쫓기 시작했는데, 바보는 몰이전문 개에게 사냥꾼의 임무를 주고 자기 자신이 거꾸로 몰이꾼을 하는 바보다운 작전을 세운 것이다. 내가 마당에서 코시의 밥을 매일 훔쳐(?) 아니 공유하고 있기에 잘 아는데, 코시는 여태 한 번도 쥐를 잡아본 적이 없다. 녀석은 그냥 소란스럽게 쫓아만 다닐 뿐 직접 잡지는 못한다. 코카스파니엘 종이 원래 그런 개인 것이다. 주인이 총을 쏘아 잡을 수 있도록 사냥감을 몰아주는 개, ‘주인니임~ 저기 꿩이 날라가유~~’하고 소리를 빽빽 지르며 몰이를 해주는 몰이꾼. 멍청한 팀 덕분에 일단 시간을 벌게 된 나는 적당히 게임을 즐기면서 탈출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코시는 바보에게 ‘몰아주는데 우째서 바보같이 가만있느냐’고 흉을 보고, 바보는 코시에게 ‘고양이가 아니고 개’라고 화를 내는 코믹한 상황이 끝없이 이어졌다.
‘우루루 왔다리---우우루 갔다리---’ 상황만 조금씩 바꾸고 일 년 이상 질질 끌며 억지웃음을 요구하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보는 듯한 이 기분. 개콘을 보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정말 이대로 가면 날이 샐 것 같았다. 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작전반경을 넓혀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이층 창문이 열려있어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그런데 이게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될 줄이야. 손자병법에 ‘서씨는 넓은 곳으로 튀어야 산다.’라고 했는데 유리했던 상황이 이 한 수를 잘못 두는 바람에 역전이 되고, 나는 방안의 쥐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보는 흐흐하고 음흉하게 웃더니 이층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코시와 한동안 난리 부르스를 추었다. 바보는 침대 위에서 빽빽 소리만 지르고 멍청이 코시는 나를 한번 잡아보겠다고 개발이 땀이 나도록 헐떡거렸다.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침대 밑에서 장롱 뒤로, 장롱 뒤에서 다시 침대 밑으로, 정말 쥐새끼처럼 쏙쏙 잘도 도망 다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냥 도망만 다닐 뿐 결정적인 탈출구가 없었다. 그런데 바보가 돌연 멍청이 코시와의 팀을 해체해 버렸다. 안무 좋고 노래 좋고 분위기까지 다 좋은데 왜 갑자기... 솔로를 선언한 바보는 갑자기 딴 바보가 된 거 같았다. 가장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처지가 된 바보가 멍청이 코시를 밖으로 내 보내고 눈을 찔끔 감더니 갑자기 막대기를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듯이 바보가 눈감고 휘두른 막대기가 어쩌다 나의 이마를 빡. 끝.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괴성을 지르며 막대춤을 추고 있어 내가 결과를 알려줘야만 했다.
“이보게 바보~ 자네가 이겼네...이제... 고만.... 눈....뜨...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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