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순덕이요.” 어머니 아버지가 “산사람이다.” 하며 꼼짝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당시 10살 정도였던 자신을 이불로 감싸 방구석으로 밀쳤는데 이불틈새로 방안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초저녁 소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당시유행 했다는 쫄쫄이바지(몸에 들어붙는 바지)를 입고 가죽장화를 신고 있었으며, 키는 그렇게 커지는 않았지만 날렵한 몸매에 권총을 차고 3명의 빨지산을 동행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긴장했던 순간을 이야기 하시는 전 마을이장 신수철씨였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6.25가 터지기 전인 1948년부터 여순반란사건, 제주4.3사건,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도 1963년 마지막 빨지산 정순덕이 산청군 삼장면에서 생포되기 전까지 빨지산의 주된 활동지역 이었던 지리산 인근 지역민들은 하룻밤 새 가족을 잃는 등 그야말로 생사를 넘다드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지리산 둘레길 금계-동강(11.2km) 구간 중 약4km 정도가 송전마을을 지나고 있어 탐방객들이 연중 끊이지 않는데, 세동, 모전, 고양터, 마적, 장암, 장재동, 송대 등 여러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 휴천면 에서는 가장 오지에 속한다 하겠다. 마을 건너편 국지도 60호선에서 마을을 이어주는 용유담 다리가 30여년 전 생기기 전에는 마을앞에서 건너편 길까지 줄을 메어 만든 출렁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말만 들어도 아찔 어지럼증이 생긴다. 그보다 전에는 나룻배가 있어 유일한 마을접근 방법이었다 한다. 지금의 다리 아래로는 지리산계곡에서 마치 계곡을 쓸어내릴 듯 달려내려 오던 물길이 순식간에 얌전해지는 곳이 있으니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용유담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가파른 지리산 계곡의 물이 마치 말이 달려오듯 내 닫는다 하여 마천(馬川)이라 하고, 그렇게 내달리던 물이 커다란 쏘 형태의 용유담에 이르러 약간 완만해지면서 숨을 고르듯 쉬어 흐른다 하여 휴천(休川)이라 하였으니 선조들의 이름 짓는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완만하다고 하지만 결코 물 흐름이 만만하지 않은데, 이곳 엄천강 래프팅은 스릴 있는 곳으로 이름이 나있는데 여름철이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파른 비탈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듯한 송전마을은 공비 토벌당시 강제로 소개(사람이 생활하지 못하게 모두 피난시킴)되어 살던 집이 모두 불태워지고 동호, 동강, 목현 등지에 임시로 이주하여 살면서 낮에는 송전마을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는데 해가져도 내려가지 않고 몰래 움막을 짓고 생활하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하였단다.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인데, 이념의 희생양이 되면서 누구에게 하소연도 따지지도 못하면서 그저 속으로 삭이면서, 그래서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은 그들이다. 동네 주민들 중 80세가 넘는 분들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단다. 체념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세월이 약이 되었을까 그들의 표정에서 지난시절의 아픔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가슴에 남아있던 생채기가 아물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용유담 다리를 건너면 처음 만나는 곳이 “지명선원” 이라는 도로변 암자와 함께 잘 지은 민박시설이 마치 하나의 마을을 새로 만들듯 들어서있는 모전마을이다. 모전마을 주민은 5~6가구이고 나머지 바위언덕 사이로 새로 지은 멋진 집들은 “용유담 이야기”에서 지은 팬션들이다. 모전마을 회관이 있는 팔각정 옆으로 난 길이 고양터와 송대마을 가는 초입이다. 2킬로미터 정도 제법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른 곳에 있는 고양터는 바람막이 하나 없는 언덕에 움막형태의 집들이 5~6가구 정도 붙어있다 시피한 마을로 햇볕은 따뜻하겠지만 비바람에는 속수무책일 듯싶은데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의문스럽다. 고양터에서 100여 미터 더 오르면 오른쪽 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에 사찰이 하나 있으니 견불사다. 이곳 주지 보덕스님은 매년 현충일에는 지리산 일대에서 희생된 억울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호국영령 추모제를 18년째 모시고 있는데, 올해는 6월7일 날 호국영령 추모음악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견불사를 지나 다시 가파른 길을 100여 미터 오르다 보면 세 갈래 길이 있는 송대마을이다. 수년전 함양군에서는 이곳 송대마을 일대에 지리산 빨지산 루트를 재현하여 관광상품화 하고자 사업비를 투입하여 당시 빨지산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비트(자연조건을 활용한 토굴 등)와 마네킹(빨지산 인형)을 설치하여 안보교육장 등으로 관광홍보를 한적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찾는 이가 적고 관리가 소홀해 지면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고 예산낭비였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개발했다는 루트의 흔적을 따라 선녀굴과 독바위 등을 오르면서 빨지산 들의 생활모습을 상상해보자. 골이 깊어서인지 곳곳에 얽혀있는 전설과 사찰 등 종교시설도 유독 많은 곳이다. 함양군지와 휴천면지에도 실려있는 마적도사 이야기와 세진대 이야기의 무대도 이곳이다. 송대마을 삼거리에서 빨지산 루트를 따라 1시간 정도 오르면 선녀굴인데 성인 10여명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으며,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 그 안에 있으니 빨지산들의 거처로는 안성마춤 이었을 것이다. 곧이어 독바위가 나타나고, 지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만날 수 있다. 다시 송대마을로 내려와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도중에 마적대라는 곳이 있는데, 수백년 된 소나무(마적송) 아래에 있는 너럭바위는 성인 20여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크기이며, 바위에는 세진대(洗塵臺)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수백미터는 될듯한 까마득한 발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마 속세를 깨끗하게 잊고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이 들게되니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아니면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이곳에서 깨끗하게 씻어주는 곳이라 하여 이름 지었는지 모른다. 이곳에 얽힌 전설에는 너럭바위에서 마적도사가 바위로 된 장기판으로 장기를 두다가 장기알로 내려치자 두 동강 난 바위로 된 바둑판이 근처 어딘가에 묻혀 있다하고 장기알은 튀어서 용유담 부근 곳곳에 기암괴석으로 변했다 하니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근처에 함양군의 선도농가로서 농업분야 신지식인 상도 받았던 강재두회장이 산양삼을 가꾸고 있는데, 궤도차를 타고 15분 정도 산속으로 오르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서 산양삼을 키우고 있는데, 방문객들을 위해 산양삼 체험을 하기도 한다. 다시 세진대까지 내려와 산길을 30여분 내려가면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옆에 송전의 중심인 세동마을이 있다. 세동마을은 처음 용유담 다리를 건너 고양터나 송대가는 길로 가지 않고 아스팔트 포장된 길을 따라 2킬로미터 정도 내려가는 곳에 위치하고, 송문교를 건너 약 3km정도를 위로 거슬러 올라오는 길도 있는데, 길 양옆으로 소나무가 울창하여 지리산 둘레길로 이용되고 있는 코스이다. 세동은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된 송전리의 중심마을이다 보니 송전마을 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회관 이름도 송전마을 회관이다. 이곳 세동마을은 수년전부터 농림수산식품부로 부터 농촌생태체험마을로 지정받아 숙식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강의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기업체는 물론 단체로 연수하기에 아주 좋은 곳으로 여름철 에는 예약하기도 수월하지 않고 연 중 이용객이 많다. 이 시설은 마을에서 운영자를 선정하여 위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 주민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송전마을 회관 바로 옆에 있는 원두막형태의 마을정자는 여름철 내내 동네사람들의 휴식공간이며, 지리산 둘레길이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보니, 둘레길 탐방객도 자유스럽게 쉬어갈수 있는 쉼터다. 오후 간식시간이 되면 집집마다 조금씩 가지고 온 감자도 삶고 잘 삭은 열무김치를 양푼에 담아 펼쳐놓고 동네사람들이 빙둘러 앉아 맛있게 먹는데, 먹을 복이 있어 때를 잘 맞춰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은 횡재한다. 어디에서 그렇게 맛난 향토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송전마을 순박한 주민들의 웃음소리와 맛난 감자와 열무김치 맛을 잊지 못하고 매년 찾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송전마을은 동네 공동소유의 논이 7천제곱미터(2천평) 정도 있다고 하는데, 산비탈이라 농경지가 귀한 이곳은 발디딜 틈만 있으면 호미로 땅을 일구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지역전체가 다락논밭이다. 이런 마을에 이렇게 넓은 면적의 마을공동 땅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 자식도 없이 살던 부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제삿날 젯밥이나 올려달라며 동네에 희사를 하였는데, 이 논을 동네에서는 소중하게 관리하고 매년 마을공동 제사를 올리고 동네기금도 마련한단다. 봄철이 되면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 나와 공동으로 모심고 김매고 추수하여 일부는 매상(정부비축미 수매)을 하여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거기다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공동으로 마을회관에서 해결하는데 식량으로 사용한단다. 이웃사촌으로 오순도순 살아가는 순박한 농촌모습이다. 주민의 주된 소득은 역시 임산물이다. 지형상 농토가 적고 대부분이 임야이다 보니 산나물, 고로쇠, 두릅, 오미자, 도토리, 버섯, 호두 등 주로 임산물 의존도가 높다. 한 때는 토종꿀 한가지만으로도 아이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낼 정도로 주된 소득원 중에 하나였는데, 몇 년 전 “봉충낭하부패병” 이라는 희귀병으로 일대 토종벌이 전멸하는 바람에 대체소득원을 찾는 것도 수월치가 않다고 한다. 초봄에는 지리산 아랫자락인 동네 뒷산에서 고로쇠물을 받아 도시지역으로 주문을 받아 택배를 보내면서 수입이 꽤 짭잘했는데, 뚜렷하던 사계절 기후에 이상이 와서인지 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고로쇠 생산량도 예전에 비해 계속 감소하고 있단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상생하면서 끈질기게 살아온 그들의 삶의 방식은 변하지 않고 다만 환경이 변하는데 따라 순응하면서 새로운 소득원을 끊임없이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발 디딜곳 도 없을 것 같은 가파른 언덕에 매달리듯 하여 비바람을 이겨낸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삶은 어떤 것 일까. 눈 덮인 한 겨울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내 달리는 그들의 삶이다. 땅에서, 바위틈에서, 나무에서 캐고 딴 것을 함양장, 인월장에 내다팔아 줄줄이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이제는 철철이 보따리 보따리 싸서 아들네 딸네 보내면서 내 팔다리 휘어지고 허리굽는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비탈길과 가파른 산지에서 생활해서 일까 다른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행 보조기로 사용하는 유모차나 전동차를 볼 수가 없다. 허리를 구부리는 형태의 평평한 논과 들일 보다는 산을 오르거나 비탈진 밭에 서서 버티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럴까. 송전마을에서는 허리가 굽거나 해서 보조기를 끌고 다니는 분들을 본적이 없다. 의학 상식은 없지만 그럴 법한 현상으로 생각이 된다. 현 김기완 이장님은 30여년을 타지에서 생활하다. 10여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함양군 귀농인 협의회장을 지내기도 한 열성적인 분으로, 마을에 각종 보조사업을 가져와 마을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으며, 올해는 건강장수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고, 우수한 지역자원을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마을축제지원사업 대상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제이름은 “지리산둘레길 송전마을 힐링축제”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세진대 전설탐방, 별보며 밤길걷기, 산중마을 바로알기 등 걷기와 산중마을의 생태를 주제로 올해가 첫 행사인데 오는 10월 10일(토) 개최예정으로 주민 모두가 축제준비에 돌입해 있다.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그들이 도회지 사람들을 초청해 놓고 무엇을 보여주려 할까. 우선 산중에서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첩첩 산중이면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삶의 터전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치부가 될 수도 있지만, 구차했던 삶을 이제는 달관한 듯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리라. 가파른 언덕에 매달리듯 달려있는 집에는 예외 없이 집채보다 큰 바위를 하나씩 안고 있다. 지금이야 장비가 있어 바위쯤 제거할 수도 있지만 당시 상황으로서는 이해가 간다. 마을을 한바퀴 도는 동안 바위틈새로 철철 맑은 물이 넘치는 샘이 5개나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언제부터인가 정지되어있던 세상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평균 80세를 전후한 주민들이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듬이 공연을 연습중이라고 한다. 젊었을 시절 모두 다듬이질 경험이 있고 옷감 다림질을 해 본 분들이라 잘 하시리라 본다. 집집마다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여 있던 다듬이와 방망이를 꺼냈고 함양읍내에서 지도강사도 오신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함양군에서 마을 경로당 마다 프로그램 운영비를 일정금액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어 강사료는 해결되었는데, 부족한 다듬이를 걱정하였더니 마침, 휴천면 산두마을 출신으로 현재 이웃 유림면에서 돼지사육 농장인 “복이있는 농장”을 운영하시면서, 함양군 바르게살기위원회 회장이신 박영식 대표께서 박달나무 다듬이 12조 구입비 1백5십만원을 선뜻 지원해 주셨다. 처음에는 두꺼운 책과 돌 다듬이로 연습하였지만, 돌다듬이는 무게가 있어 부상 우려도 있었는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불로 밥을 짓고 역시 가마솥에 시래기국을 끓여 방문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니 어디에서 그런 정겨운 음식을 맛볼 수 있을까. 지역에서 생산된 토속음식과 함께 어르신들의 애환이 묻어날 다듬이 소리가 또닥또닥 기대된다. 행사를 알리는 의식행사도 없고 보여주기 위한 행사성 프로그램은 모두 없애고 진정한 마을 축제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직접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도 축제인데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과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관련된 외부기관과의 협력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22개코스, 약300km를 관장하고 있는 (사)숲길은 매년 지리산 둘레길 주변지역의 자원을 소재로 한 걷기 체험행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송전마을에서 계획하고 있는 걷기와 산중마을 체험 등을 소재로 한 축제에 공동으로 참여하기로 하여, 전국망을 가지고 있는 (사)숲길의 홍보력과 송전마을의 의지 그리고 함양군이 힘을 모은다면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축제가 되리라 본다. 또, 지리산권 주변 7개 자치단체가 조합을 결성하여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인 “지리산권 관광개발조합”에서도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 받았고, 함양읍에 위치한 남부국유림관리사업소에도 목공예체험 부스를 무료로 운영하기로 하는가 하면, 자동차 정비기능사 2급 자격이 있는 운서마을 이장님은 차량무상점검 서비스를 해준다고 하고, 축제장 분위기를 위해 함양군 공무원 기타동아리, 풍물패 연주와, 색소폰, 연주도 지역민들이 봉사활동으로 참여한다고 하니 알찬 축제가 될 것 같다. - 송전마을로 가는 교통편은 대중교통인 함양군내 버스가 하루 3회 있는데, 함양교통(함양읍내 군내버스)주차장에서 06:20, 08:30, 19:00 출발하여 휴천면 소재지를 거쳐 5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송전마을 회관에서 5분정도 정차하고 다시 함양읍으로 돌아간다. 승용차로는 40여분 소요되는데, 국지도60호선을 따라 가다 송전마을 앞에서 송전교를 건너거나 마천면 방향에서 갈 때는 용유담 다리를 건너면 된다. 서울에서는 지리산 백무동가는 버스를 타고 마천면 소재지에서 내리면 택시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고 용유담 다리입구에서 내려 걸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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