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 달빛이 마을 구석구석을 훤하게 비추는 듯한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달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고전은 물론 현대문학에도 자주 등장한다. 캄캄한 밤에 희미하게나마 길을 비쳐줄 때 밤길을 걷던 우리는 고마움과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길을 걷는 내내 달을 올려다보곤 하였다. 부담 없이 쳐다볼 수 있어 친근하고 부담 없는 관계이자, 때로는 말 못 할 비밀을 공유하는 은밀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기주 월평이장님은 올해 예순여섯이다. 이곳 월평에서 태어나 함양중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2남2녀 자녀도 있고, 농사짓고 살다가 서른이 되어 부산으로 출타하여 회사생활을 하였는데, 아이들도 모두 출가시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10여년 전 회사를 퇴직하자마자 귀향해서 많지는 않지만 매월 받는 연금소득과 소일삼아 약초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그동안 돈 잘 벌었고 부부가 노후를 걱정 없이 살고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사회봉사 차원에서 동네일을 맡게 되었단다. 함양군지(咸陽郡誌)에는 김녕김씨가 이 마을에 처음 정착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기주 이장님의 이야기로는 임진왜란 당시 남원전투에서 공을 세웠다는 합천이씨가 처음으로 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며, 법화산(992m)과 삼봉산(1186.7m) 능선을 따라 달이 뜨고 진다하여 마을 이름을 월배(月背)라 하였는데, 1995년에 지금의 월평저수지가 완공되면서 농업용수를 넉넉하게 확보하게 되자 주민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면서 그랬는지 지금은 월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월평마을은 법화산의 북쪽방향 무릎께에 위치하고 있으며, 10여호가 있는 사구실 마을,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놋점골, 살구징이, 옹구바탕” 이라는 산골스러운(?) 이름의 자연마을이 있었던 흔적과, 수정이 많이 나왔다는 유리밭골, 조그만 폭포가 있는 상사바위도 있고, 또 예전에 함양사람들이 화계장터에서 산나물, 약초와 소금, 생선 등을 물물 교환하기 위해 지리산 장터목을 넘나들며 지나다니던 소금길 역참이 이곳 오도재(悟道재)를 넘어가는 길옆 옹구바탕 근처에 있었단다. 지금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시골산골 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구석구석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휴천면 소재지에서 완만한 경사길 약 2km정도를 오르면 동네 초입에 월평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법화산이 오른쪽으로는 삼봉산자락이 양팔로 물동이를 그러안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잠깐 눈을 돌리면 붕어라도 낚이는지 가끔 낚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저수지는 20년 전 농업용으로 만들어져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이 지역 영농에 많은 도움을 줘왔으며, 지금도 웬만한 가뭄에는 물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하는데, 올 여름처럼 가물 때에도 이 지역 일대는 물걱정 없이 논마다 물이 철철 넘치게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월평저수지를 아낄 법도 하다. 월평마을 가는 길이 두 갈래인데, 나중에 설명할 오도재에서 가는 길과, 지금 이곳 저수지를 왼쪽 발아래 두고 난 길이 있다. 바로 이곳 초입에는 올 초에 창고처럼 보이는 조립식 건물을 지어 “함지공방”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전통가구를 만드는 목조공예 공방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 김형철씨는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목공예공부와 소목장 기능을 전수받고 이곳 고향에 공방을 마련하였는데, 주로 여인들이 사용하는 전통가구를 만드는 일을 해서인지 수줍음을 많이 타는 키가 껑충한 총각이다.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은 물론, 지역의 소중한 발전자원으로서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함지공방을 역시 왼쪽으로 두고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꼬불꼬불 난 농로를 100여미터 가다보면, 최근에 설치한 콘크리트 다리는 둘러쳐져 있는 울타리와 함께 주위 풍광과 어울리지 않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좀 더 깊숙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도랑과 그 도랑을 따라 난 전형적인 시골길을 만날 수 있다.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큰 도로에서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몇 번을 휘어지며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전혀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는데, 드디어 느티나무가 나타나고 마을 어귀에 다다른 느낌이 드는 과연 사람 사는 곳이다. 그렇게 감탄을 하며 마을을 들어서면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시절에 쌀 증산 정책으로 지었다는 시멘트 블록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을 한 마을창고가 맨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하지만 어쩌랴 저 창고가 지금은 천덕꾸러기에다 흉물스럽게 비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식량증산이 최고의 농업정책이었던 당시에는 우리농촌도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구실을 하였을 것이고, 실제로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하나의 시대적 상징물이라 하겠다. 이장님의 말을 빌리면 이 창고를 장차는 마을공동 실내공간으로 만들어 마을행사는 물론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마을창고 모퉁이로 제법 넓은 광장이 나오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마을회관이 있는데, 경로당겸 마을회관이니 평소에는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필요시에는 전 주민이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이 갈라지는데 순환하는 길이니 어떤 길을 선택해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온다. 생긴 지형을 그대로 살려 아늑하고 편안하게 휘어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마을 안길이 모두 돌담이다. 마치 달빛이 온 마을을 골고루 평온하게 비춰 주는 밤길을 걷는 착각이 든다. 돌 하나하나에 켜켜이 쌓인 이끼와 흙먼지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구렁이라도 구렁구렁 기어다닐 듯한 돌담장 사이로 불운의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팍팍했을 민초들의 삶을 그려본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도 돌담길도 모두 걷어내었을 법도 한데, 어떻게 그런 세파(?)를 견디고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덕수궁 돌담길처럼 전문가가 멋들어지게 높고 정교하게 쌓은 것은 아니고, 문득 생각나면 개울가나 밭 언저리에서 가져온 돌 하나하나를 얹어 그저 이웃집이랑 길과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다 보니 맵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틀비틀 촌스럽다. 반듯반듯하여 이것저것 손실을 따져 선을 긋는 듯한 담장보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내 집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마을회관 왼쪽으로 난 길로 오르는 길 가장자리로는 졸졸졸 도랑이 흐르고 가재라도 살듯 맑다. 지금은 이런 시골마을에도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겠지만 아마도 최근까지 저 도랑에서 빨래도 하고 등물도 껴얹고 했을 것이다. 이장님은 마을앞 진입로가 좁아 버스가 마음대로 출입이 어려우니 확포장을 해달라고 자주 건의를 하시는데 그때 마다 나는 동네 살고 계시는 분들의 불편한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마을의 최대 장점은 느티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도랑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진입로와 함께 마을의 돌담길입니다. 앞으로 큰 재산이 될 것이니 잘 보존해야 합니다.”라고 답변을 드리곤 하였다. 여러 자치단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가옥이나 전통문화 복원사업이 지나치게 상업성을 띄면서 사업의 취지들이 무색해지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월평마을 만큼은 아름다운 현재 모습을 잘 지켜내고 싶은것이 내 생각이다. 월평마을을 소개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오도재(悟道재)가는 길이다. 함양읍 구룡리 조동마을 앞 국도24호선에서 시작해서 마천면 창원리 금계마을 앞 국지도 60호로 연결되는 지방도1023호는 연장이 약 8km 정도 되는데 이중 5km 정도가 행정구역상 휴천면 관할이고 급경사와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우며, 많은 사진작가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도재 마루는 법화산과 삼봉산을 이어주는 경계이며, 이곳에 지리산 제일문이 2005년도 건립되어 찾는 이를 반겨주고 있고 널직한 주차공간이 있는 휴게소와 특산물 판매점이 있으며, 함양읍내 일부를 조망할 수 도 있고, 운이 좋아 가끔 만날 수 있는 운해는 장관이다. 함양군사(咸陽郡史)에는 오도재를 “진시황의 장생불사를 위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이 수백명의 인부를 대동하고 지리산(방장산)으로 올랐을 때 머문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지역으로 해발 773m이며, 서쪽으로는 삼봉산, 남쪽으로는 법화산이 양갈래로 뻗어있는 재로서 옛 명칭은 오도봉이다.”로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삼봉산과 법화산을 오를수 있으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이곳 오도재를 중심으로 삼봉산 아래에는 우리나라 죽염을 발명하신 김일훈 선생의 후손이 인산동천 이라는 연수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법화산 허리깨로는 오도재에서 시작되는 임도가 잘 닦여 있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문상마을로 이어지는데, 이 임도는 아쉽게도 문상마을 길과 300미터 정도를 남겨놓고 연결을 하지 못하고 있어 수년간 임도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행스럽게 이 길을 개설하게 되었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문상마을을 소개할 때 자세하게 설명 드리고자 한다. 오도재 조망공원에서 마천면 방향으로 5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리산 조망공원이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코앞에 천왕봉을 볼 수 있는데, 세 개의 봉우리 중 왼쪽부터 하봉, 중봉은 우리가 바라보는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낮아 보이는 맨 오른쪽 봉우리가 상봉(천왕봉)이다. 휴천면장으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평이장님이 동네 사람이라며 한 분을 모시고 왔다. 동네에 비어있는 집을 빌려 귀촌을 했는데, 그 집에서 식당을 하려고 허가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할 테니 시식 겸 품평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식당 건물은 목조로 제법 야무지게 잘 지어진 건물로 식당이름은 “숲속마루” 이며, 주 메뉴가 한방 오리수육이다. 한방오리수육을 먹음직스럽게 조그만 나무광주리에 썰어 담고 그 광주리를 갖은 양념을 한 죽을 담은 냄비에 바쳐서는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피우니, 먹는 내내 수육이 따뜻하다. 오리고기 수육은 처음 먹는데 담백하고 쫄깃한게 주위에 추천을 하고 싶을 정도이다. 수육을 먹는 동안 푹 고운 죽 맛도 그만이다. 산나물과 싱싱한 제철 야채를 곁들여 푸짐하면서도 격이 있는 식사를 했구나 하는 만족감이 들게 한다. 승용차가 식당까지 갈수는 있지만 마을회관 앞에 세워두고 양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 돌담을 감상하면서 돌아돌아 완만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면 반대쪽 길과 만나는 구조로 되어있고, 동네에서는 제일 위쪽에 식당이 자리하고 있어 돌담길 걷는 즐거움과 함께 식당 분위기도 그만이다. 식당주위로 비어있는 집은 수리해서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어 시골집 민박을 하면서 힐링을 원하는 도시민들에게 소개해 주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오리수육 요리가 4인 기준 5만원이며, 바닷가를 자주 왕래한다는 사장님이 물 좋은 해산물을 이용한 해물탕도 아주 맛이 있다. 첩첩 숲속에서 먹는 해물탕도 별미일 것 같다. 월평마을 교통편은 대중교통인 함양군내 버스가 하루 4회 왕복하고 있는데, 함양교통(함양읍내 군내버스)주차장에서 오전06:40’, 09:40’, 15:10’, 19:10’ 출발하여 휴천면 소재지를 거쳐 20여분이 소요되는데 월평마을에서는 5분정도 정차 후 다시 함양읍내로 출발한다.
승용차로도 20여분이 소요되는데, 휴천면사무소 앞에서 오도재 가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고, 함양읍에서 남원가는 국도24호선을 따라 가다 함양읍 죽림리 조동마을에서 지리산 제일문 가는 방향인 오도재 길을 들어서서 2km 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다, 완만해지는 길을 만나 좀더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왼쪽으로 월평마을 입구에 “돌담이 아름다운 월평마을”이란 마을 표지판을 만나는데, 산길을 호젓하게 드라이브 하는 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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