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덥기가 이를 데 없다. 600고지 산속에 살고 있는데도 더위는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매미의 목청을 달구어 울어 터지게 한다. 매-엠 맴. 연일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지고 대구는 38.3도, 경북 영천은 39.4도로 올여름 최고 기온을 기록한다. 40년만의 더위라고 하니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명작 『이방인』에서 판사는 살인을 한 주인공 뫼르소에게 묻는다. 왜 아랍인을 쏘았는가?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한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남자. 카뮈는 폭염과 무더위가 가져온 무서운 여름을 흐트러짐없이 이렇게 적어나간다.
-주위에는 한결같이 햇빛이 넘쳐서 눈부시게 빛나는 벌판이 보일 뿐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중략)구름처럼 드리운 무더운 공기 속으로 페레스 영감이 까마득하게 멀리 나타나 보이더니 이윽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중략) 그는 다시 벌판을 가로질러 갔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나 되풀이 했다. 나는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는 것을 느꼈다.
햇빛과 무더위는 어렴풋하게 용해되어 끈적거리는 세계로 일종의 환각상태를 연출한다고 비평가는 말한다.
-장례 행렬의 뒤를 따를 때 견딜 수 없이 쏟아지는 햇빛의 영향, 즉 일종의 액화현상과 검은 색이 그러하다. 녹아서 갈라터진 아스팔트, 콜타르의 번쩍거리는 살, 검은 반죽으로 이겨서 만든 것 같은 마부의 모자, 사람들이 걸친 상복의 흐릿한 검은 빛깔, 니스 칠한 영구차의 검은 빛깔, 실내에 들어올 때의 침묵.
그 중심에는 공격적인 태양이 있다. 길에 나서자 뜨거운 햇볕에 따귀라도 맞은 느낌, 햇빛을 반사하는 모래, 쇠붙이 칼, 사금파리, 권총. 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고 뫼르소는 말한다.
더위는 이렇게 사람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고 그 스트레스는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는 것을 느끼게 한다. 불쾌지수가 높아가고 사람들은 신경질적이게 되고 무기력이 보이지 않게 사람의 몸과 정신을 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여름의 폭염과 무더위를 한낱 인간이 어떻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산과 계곡과 바다로 피서를 떠난다. 그러나 숨이 콱 콱 막히는 이런 날씨에 인파가 몰리는 피서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자살골을 차러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여름에 방콕에 간다. 방에 콕하고 박혀 뒹굴뒹굴하며 만화책이며 무협지며 밀린 영화 씨네21을 보며 밤낮으로 죽친다. 어느 덧 한 여름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모처럼의 휴가가 허망하다 싶은 사람은 내가 살고 있는 대봉산 계곡으로 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병곡 원산마을 계곡은 읍내에서 이십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이다. 붐비지도 않고 한적함이 마음을 한결 시원하게 한다. 계곡물은 맑고 차다. 여름이면 60세 중반의 노인이 시원한 삼베 파자마에 런닝을 걸치고 그늘진 계곡가에 침대 의자를 놓고 비스듬히 누워 발을 담그고 하루 종일 책을 보다 간다. 며칠을 그렇게 보낸다. 매년 여름이면 늘 이 계곡가에 오는 어르신을 보며 저것이야말로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산중독서삼매경 피서법>이 아닌가 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근래 2,3년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이 된다. 폭염의 이 여름, 여러분들도 한번 쯤 계곡물가에 아이들과 발을 담구고 만화책이든 요리책이든 카뮈의 『이방인』이든 읽어 보며 어스름 여름 저녁을 맞이해 보라고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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