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양파를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아싹” 소리를 내며 양파 특유의 냄새가 입 속 가득 퍼진다. 코끝에 매운바람이 살짝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맛있다. 이 맛,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굳이 설명하자면 맵싸하면서도 달달하다. 나는 양파를 생으로 먹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고 밥과 함께 먹는 것도 아니다. 오직 양파만을 양념장에 찍어 과일처럼 먹는다. 친구들은 “그 매운 것을 어떻게 먹느냐”고 하며 얼굴에 인상을 쓰기도 한다. 마치 먹지 않아도 맵다는 듯이. 매운 것? 그것이 왜 나에게는 맵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수확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양파에는 특유의 맛이 있다. 그것이 양념장과 결합 되면 어떠한 과일보다도 맛있게 느껴진다. 양파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저장기간이 길어지면 양파는 점점 매워진다. 그때가 되면 나도 생 양파 먹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러니 팔월이 지나면 더 이상 양파를 생으로 먹을 수 없다. 내 혀도 매운 맛이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양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에 있는 느티나무다. 고향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밑은 내 유년의 놀이터였다. 특히나 땡볕이 하염없이 내려앉는 여름에는 그곳만큼 시원한 장소는 없었다. 가지 많은 나무는 부채처럼 하루 종일 바람을 만들어 주었다. 까만 얼굴의 친구들과 함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공기놀이를 했고 줄넘기를 했다. 그러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동무생각’을 혹은 ‘고향의 봄’을 소리 높여 불렀다. “봄의 고향 악이 울려 퍼지면······.” 불혹은 넘긴 지금도 가끔 그 노랫말을 흥얼거린다. 내 어린 친구들도 어딘가에서 가끔은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놀이에 싫증이 나면 느티나무에 올라가 먼 들녘을 바라봤다. 뻐꾸기 소리 귓가를 간지럽히고 바람에 탱자 익어가는 냄새가 묻어 왔다. 포플러 이파리는 팔랑팔랑 손짓을 하고, 쨍그랑 쨍그랑 워낭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그리고 먼 들녘에는 웅크리고 앉아 양파를 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젖은 재처럼 고요했던 옛 풍경······. 고향은 양파 농사를 많이 짓는 곳이었다. 양파는 흔했다. 마을 곳곳에 농사지은 양파가 가득 쌓여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가끔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양파를 소금에 찍어 먹고는 했다. 그것은 우리들만의 간식이었다. 그때 양파의 맛에 중독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없는가 보다. 친구들과 함께 양파를 먹던 시절의 이야기는 점점 기억 속에서 하얗게 바래져 간다. 그날을 풍경을 떠올리려 해도 꿈인 듯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나는 양파 캐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양파를 먹는다. 억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양파를 먹는 시간이 즐겁다. 어쩌면 양파를 먹으며 오래전 그날의 기억을 붙들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함양도 양파 농사를 많이 짓는다. 오월과 유월이 되면 들판 곳곳에는 양파를 캐는 풍경이 펼쳐진다. 오월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휴일이었다. 외출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내렸다. 마을을 벗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들녘에 사람들이 보였다. 양파를 캐는 사람들이었다. 비옷도 입지 않고 사람들은 빨간 망에 열심히 양파를 담았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뭔가 따듯하고 아련한 느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흥건히 고여 들었다. 그 풍경 속에 젊은 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도 섞여 있는 듯 했다. 괜스레 눈시울이 시큰 거렸다. 자동차의 창문을 내렸다. 가랑비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에 독특한 냄새가 묻어있었다. 은은하면서도 쿰쿰한 냄새……, 코끝에 맴도는 냄새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마치 고향에서 맡았던 냄새 같았다. 아마 타향이 점점 고향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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