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체육회장 당시 등구정 만들기 발로 뛰어지난 7월28일 오전 함양 축구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이종현(94) 전 병곡면체육회장을 만났다. 병곡면 송평마을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만난 이종현 전 회장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한 이력이 있어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날 만남에는 이정호 송평리 이장과 이문수 병곡면체육회장, 이병두 전 병곡면 체육회장, 이종훈 월암마을 노인회장, 이상인 전 송평리 이장, 박정영 병곡면사무소 총무계장을 비롯해 안병명 함양축구협회장, 정명호 함양군체육회 사무국장, 이정수 본지 창원지사장이 함께 했다. 이종현 회장의 구술에 의한 것이어서 언급되는 이름 등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종현 회장은 “진작 여러 사람을 만나 축구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 귀도 잘 들리지 않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라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공을 차는 것이 놀이였다는 이종현 회장. 새끼줄을 둘둘 말아 만든 축구공을 짚신을 신고 차던 기억, 5m 벽을 세우고 하루 종일 공놀이를 하던 기억 등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축구를 계속 이어갔던 그는 재일본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구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곳에서 하준수씨 등 당시의 함양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축구를 할 당시의 사진이나 기록 등을 남겨두지 않았다. 일본 유학파로 사상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 스스로 모두 폐기 처분했다. “그때 자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모두 태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이후에도 그는 함양 축구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전진옥(?), 하준수, 우두형씨 등과 수많은 교류를 통해 축구계를 이끌었다. 또한 그는 축구를 비롯해 정구와 탁구, 씨름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마을에 축구회를 만들어 어느 부락 어느 면이 세다 그러면 대회를 청했었다. 남원으로 구례, 안의 등지를 찾아다니며 대회를 가졌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마을마다 축구를 했었다. 그 중에서 함양이 제일 잘했다. 다른 지역에서 무서워 할 정도였다. 축구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 송평청년회를 주축으로 8.15경축 축구대회가 치러졌다. 병곡면 내에서 치러지는 대회였지만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눠 각각 10여개 팀이 출전하는 면내 가장 큰 대회이며 단합대회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1년 내내 벌어서 8.15 때 모두 쓴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달 전부터 발을 맞추고 마을 대항이어서 서로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송평마을에서만도 7개반 대표 선수가 있을 정도로 마을 내에서도 기 싸움이 심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해 간식을 준비하고 마을의 자존을 건 대결이었다. 당시 축구인들은 많으나 제대로 공을 찰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면체육 초대회장을 맡으며 등구정을 일구었다. 여기저기 분산된 토지의 소유주들을 찾아다니며 토지 희사를 요청해 현재의 등구정, 또는 구인정이 만들어 졌으며 병곡면체육회의 산실로 남아있다. 이런 앞선 어른들의 노력 때문인지 아직도 병곡면체육회는 어느 지역보다 단합이 잘 되고 있다. 지난해 군민체육대회에서는 전체 종합 2위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면체육회는 다른 지역의 경우 면체육회는 당연직으로 면장이 맡아 하지만 아직도 지역민이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이문수 병곡면체육회장은 “앞서 어른들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전통을 이끌어 보다 발전하는 병곡면체육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자신했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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