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함양 백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행복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함양군에서 지역민 유치를 위해 몇 년 전에 조성한 전원마을이다. 전국 각지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려고 사람들이 집을 지었다. 이곳에 같은 모임에서 글을 쓰는 지인이 살고 있다. 함양을 자랑하고픈 지인이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네이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의 집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지인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를 집을 찾느라 야단법석이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데 작은 도랑건너 지인이 손짓을 한다. 우리는 집 뒤편에서 어정거렸던 것이다. 길을 돌아가니 오월의 장미가 주인과 함께 울타리너머로 정답게 손짓하며 반겨준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한적하던 마을이 갑자기 시끌시끌 거린다. 이웃 사람들이 울타리 너머로 기웃거리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처럼 방문객 수가 많은 것은 마을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인지 모른다. 대문을 들어서 자그마한 정원을 둘러본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마다 주인의 손이 스쳐간 흔적들이 엿 보인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니 더위와 갈증을 해소하는 수박과 음료수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먹으며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는 산행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을 뒤편의 백암산을 오른다. 산 중턱을 지나니 따가운 햇살로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 맺힌다. 등에도 소나기 같은 뜨거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우거진 숲길이 아니다. 숲에는 키 작은 나무만이 가득하여 그늘이 없다. 뜨거운 햇살과 땅기운이 온몸을 달군다. 울창한 숲속 길을 걸으며 멋진 풍경과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려던 기대감이 사라진다. 몇 년 전에 백암산에 원인모를 큰 산불이 있었다고 한다. 그 불로 소나무 군락은 사라졌다. 그 때의 생체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길가에 아름드리 소나무 그루터기가 화마에 그슬린 제 몸을 비바람에 삭아 내리는 모양새다. 어렵게 살아남은 소나무들이 씨를 뿌렸던 것일까. 주위에는 푸른 나무들이 한창 키를 키우고 있다. 나무들은 소나무이다. 몇 년 더 흐른 후에는 이곳도 분명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룰 것이다. 비록 울창한 숲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나름대로 볼 것이 많다. 꺼멓게 섞어 가는 나무가 곤충들에게 산란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보인다. 그 모습이 자식을 위해 자기 몸을 다주고도 기쁘게 살아가는 어머니 맘처럼 느껴진다. 그 주변에 동물이 파놓은 구덩이가 보인다. 그루터기 속에 숨은 벌레로 배를 채우려는 너구리의 소행이란다. 모두들 정상에 오르려던 마음이 더위에 지쳐 간다. 정상은 눈앞에 보이지만 자석에 붙어버린 듯 발이 나아가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가 앓는 소리를 한다. “아이구, 더워서 나는 포기 할라요.” 그 소리에 모두의 마음이 허물어진다. 여기저기 몸을 식히려고 작은 그늘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거린다. 산중턱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가지고 온 간식거리를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그 모습이 정겹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산을 내려간다. 바쁜 걸음으로 산을 오르느라 놓친 것이 보인다. 귀여운 손자의 손을 닮은 고사리가 살랑살랑 손짓을 한다. 내가 어릴 때 고향에서 본 풍경 한 자락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이 되면 가야산 기슭에는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른들은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하여 숲을 태웠던 것이다.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마을에는 다행히 산불 한번 나지 않았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이르니 노란달맞이 꽃이 방싯거리며 지친 심신을 위로를 해 준다. 나지막한 나무울타리로 예쁜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 있다. 그 한편에 낯선 나무로 만든 문패를 보던 순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었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로로 天(천) 김○○ 地(지) 이○○ 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때 시끌벅적한 인기척에 바깥주인이 아름답게 조각한 현관문을 열고 다가온다. 문패를 가리키며 궁금증을 물어보니, 그는 서예 공부를 하는데 호가 천지(天地)라는 말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늘날에 누가 감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문패에 새겨 내 걸 수 있겠는가. 퇴직을 하고 집에서 하루 세끼를 먹는다고 ‘삼식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절에 간이 커도 정말 크다.마을 언덕에 작은 쉼터인 정자가 보인다. 그 주변에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인양 버티고 있다. 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가끔 아랫마을 할머니들이 촛불을 밝히고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라고 한다. 등산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마을을 구경한다. 고즈넉한 마을, 집집마다 정원이 있고 그곳엔 다양한 꽃들로 가득하다. 이웃집 간의 띄엄띄엄 보금자리를 튼 것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전원에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하기 위한 저마다의 바람이 느껴진다. 포장된 길 왼쪽에 진짜 멋있는 집 한 채가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집 전체가 한 점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함양군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주택` 상을 받은 집이라 한다. 그 곳에서 몇 발자국 옮기니 드라마 같은 것에 등장할 고향 마을의 누군가를 만난 듯 마음이 흐뭇하다. 법한 한옥집이 눈동자에 들어온다. 반가움에 맘이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릴 적 고향마을에는 저런 한옥집들이 많았다. 마을에는 지구촌에 산재한 모든 집들이 한곳에 모아 전시장을 만들어 놓은 듯하다. 똑같은 디자인은 찾아 볼 수 없다. 하나같이 예술작품처럼 지어져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도 언젠가는 예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꽃도 심고 작은 텃밭도 가꾸면서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백암산이 옛 모습을 갖추고, 들판에 꽃향기로 가득하는 날 행복한마을을 다시 한 번 밟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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