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계곡 속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용성 큰스님의 발자취가 서린 화과원을 찾아가는 길은 성지 순례를 떠나는 길처럼 경건했다.
제 9호 태풍 ‘찬홈’이 물러가고 불볕더위가 시작된 지난 7월 15일. 위림초등학교 이정구 교장과 교사 등 10여명과 함께 화과원 순례길에 올랐다. 최근 화과원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위림초등학교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화과원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독립애국정신을 고취시켜 나가고 있다. 이정구 교장은 “화과원 교육을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운 날씨지만 모두 함께 참여하는 등반을 결정했다”라며 이번 화과원 순례 목적을 설명했다.
백전면 백운암 앞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2시30분. 참여한 교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이후 곧바로 산행길에 올랐다. 백암산 오르는 산행로를 따라 화과원까지는 5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백운암에서 시작된 산행길은 시작부터 불어난 계곡물이 일행을 방해했다.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면서 징검다리가 잠겼다. 남자 선생님들이 새롭게 징검다리를 놓은 후에야 건널 수 있었다. 이후의 산행길은 비교적 잘 정비된 산행로를 따라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시내 온도가 30도를 넘어서는 푹푹 찌는 폭염의 날씨였지만 계곡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물과 폭포수는 무더위에 지친 마음을 풀어주는 것 같은 청량함을 선사했다. 앞서 화과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이정구 교장이 선두에 서서 일행들을 이끌었다. 뒤처지는 일행을 배려하는 이정구 교장은 “화과원 가는 길이 지금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예전에는 범인의 발길이 닫지 않는 외부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 터를 잡고 독립운동을 위해 이바지하신 용성 큰스님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라며 소감을 말했다. 약 30분 정도 오르자 ‘용소’의 시원한 폭포 소리가 귀를 맑게 했다. 용소를 지나 약 10여분 정도 더 올라가자 저 멀리 나무 사이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예전 용성 큰스님이 1만3709㎡ 규모의 농장을 가꾼 곳입니다” 이정구 교장의 설명대로 계곡 속 별천지가 펼쳐졌다. (사)적멸보궁 화과원 사찰로 화과원이 불탄 이후 수십년 만에 자리잡은 화과원의 뜻을 이어받은 곳이다.
백암산 8부 능선에 위치한 화과원은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한 백용성 대선사가 수만 그루의 과수를 심어 승려들이 참선하면서 일하는 선농일치의 불교운동을 펼친 곳이다. 특히 선생이 화과원에서 과일을 재배하고 도자기를 구워 팔아 마련한 자금을 군산항에서 비밀리에 중국 상해와 용정 등지로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해 항일 독립운동에 큰 힘을 보탰다. 3.1운동 이후 일본이 확실하게 제국주의 기반을 마련한 1920년대 서슬 퍼런 일본의 눈길을 피해 함양의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 백암산에 터를 잡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용성 큰스님이 1927년 화과원을 세운 이후 88년 지난 오늘 드디어 그 분이 이룬 업적을 볼 수 있겠다는 달뜬 마음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화과원은 그 동안 인문학적으로 기억했던 독립운동의 산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그저 수풀이 우거진 계곡으로 변해 있었다. 그 규모가 너무나도 실망스럽다는 느낌에 앞서 용성 큰스님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더했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용성 큰스님이 경작했던 배나무와 감나무 등 과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한 수목으로 뒤덮였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하신 그 분의 정신이 서려 있는 이곳이 방치되다 시피한 상황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80여년 전 나무를 심고 받을 일구고, 땀 흘리는 가운데 선농일치(禪農一致) 사상을 실천했던 용성 큰스님의 발자취는 이제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과거 분주하게 유실수와 채소, 그리고 농산물을 재배하며 오갔던 스님들의 모습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방치된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다만 적멸보궁 화과원 앞에는 화과원이 만들어진 배경과 용성 큰스님의 행적 등을 알리는 ‘함양 백용성선사 화과원 유허지’라는 안내판만이 이곳이 역사적 현장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화과원은 지난 6.25 전쟁 당시 모두 소실되어 폐허로 변했지만 지난 1990년 법당인 봉류대 하나만 복원되었다. 현재는 용성 큰스님의 제자인 혜원 큰스님이 (사)적멸보궁 화과원을 건립하고 스승의 뜻을 이어 받고 있다. 일행이 찾아간 날은 반기는 이 아무도 없었다. 조금은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화과원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발로 뛰고 계신 혜원 큰스님을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현재 화과원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정계와 불교계, 학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월 19일 ‘화과원 국가사적 지정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열고 대정부건의안을 채택했다. 조만간 정식으로 총회를 개최해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힘을 모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처럼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용성 큰스님이 전한 독립애국정신이 더욱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화과원을 둘러 본 후 이정구 교장은 “화과원을 활용해 학생들이 이곳 백암산의 수려한 자연 속에서 용성 선사가 남기신 애국애족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교육관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화과원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길은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3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그 동안 지역사회에서조차 잊혀진 역사의 유산으로 남아있던 화과원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민족정기를 이어받은 애국애족의 산실로서 더욱 그 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학생들의 애국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는 위림초등학교의 노력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한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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