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엄천골짝에 바람이 붑니다. 무슨 바람이냐고요? 산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누구누구는 천왕봉에 갔다 왔다 카드라. 가보니 엄청 좋다 카드라.’하는 말들이 무성하더니, 맨 날 지리산에만 올라갈게 아니라 이번에는 남들처럼 관광버스타고 멀리 다른 산에도 한번 가보자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지리산에 올라갔는데 못 오를 산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죠. 조금 있으면 가을걷이하고 이어 곶감 깎는 철이 닥치니 그 전에 움직여보자고 의논이 되어 9월 마지막 목요일에 속리산에 가기로 결정되었는데 가는 날 아침부터 산행을 축복하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전날부터 비가 오락가락 했기 때문에 비옷 준비는 완벽했습니다. 세동 아지매(사실상 할매)는 우주복형 비옷에 일회용 우의를 하나 더 걸치고 모전 아지매도 우주복형 비옷을 입었는데 조금 걷다가 더워 다 벗어버릴 것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ㅎㅎ아니나 다를까! 좀 걷다 비가 완전히 그친 것은 아니지만 모두 비옷을 벗어 버렸습니다. 비옷을 벗어 던질 때에는 빗물보다 땀에 흠뻑 젖고 난 뒤였습니다. “아지매요~ 지난 번 구두신고 천왕봉 갔을 때 발바닥 괜찮았능교?” “그럼~ 괜찮코말고... 아무 이상 엄었서...”“이번에는 멋쟁이 구두 안신고 등산화 삐까번쩍한 거 신고 오셨네요” “그래~구두 신고 산에 간다고 놀려싸서 하나 샀지” “오늘은 새 등산화 신고 오셨으니 날라 다니시겠네?” “그래~진즉 하나 살 걸 그랬네.ㅎㅎ”그런데 엄천골짝에 바람이 불어도 단단히 불었습니다. 우선 산행 참석인원이 26명이나 되는데 엄천 골짜기에서 두발로 걸을 수 있는 60∼70은 거의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걷다가 나무 작대기나 하나씩 주워 지팡이 삼았는데 이번에는 모두 번쩍번쩍하는 등산용 스틱을 하나씩 장만해왔습니다. 물론 신발도 모두 등산화입니다. 세동 아지매도 큰맘 먹고 장만했다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등산화에 길이가 조절되는 스틱, 세련된 배낭까지 전부 업그레이드 하셨습니다. 바지만 등산용 바지가 아니고 청바지를 입고 오셨다는 걸 빼면 완벽합니다. “아지매요~ 지팡이 얼마주고 사셨어요?” “이거... 싼 건데 머...”하며 멋쩍어하십니다. 그러자 백연마을의 행님이 쌍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은근히 자랑합니다. “이거 한 개에 이만 오천 원짜린데, 육천 원짜리하고는 쫌 차이가 나제. 비싼 거는 한개 사 만원 돌라 카드라고...” 모두들 새로운 장비로 무장을 해서인지 26명의 엄천골 산악대원들은 단 한명의 낙오도 없이 소백산에 올라섰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 당일 산행을 했는데 소백산에서 우물쭈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상인 문장대에 올라 부부 기념촬영을 했는데, 차렷 자세로 긴장한 세동 아제에 반해 아지매는 여유만만입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수다를 떨었습니다.“요새는 세월이 우째 이리 빨리 가는동...” “내가 엄천꼴짝에 시집왔을 때, 그때는 그리 세월이 안가드만... 몸써리가 나도록 세월이 안가드만...” “요즘 이렇게 산에 돌아다니니 세월이 더 빨리 가능구만.....” “근데, 요산이 쪼매 낮제? 울 지리산 보담야.” “하모, 그렇제.” 신선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속리산이 산은 참 좋은데 좀 낮다는 말이 나오더니 누군가가 설악산 얘기를 꺼냈는데 금새 분위기가 달아오릅니다. “그려~ 내도 살악산엔 함도 안가봤다~~” “우짜든동 거기도 한번은 가봐야 안되겄나...”“거기는 하루 자고 와야 될낀테... 돈이 많이 들낀데...” “지랄한다~그 돈 죽을 때 가져갈 거가? ” “그라먼 한번 가보나 우짜나...” “마 시끄럽다. 다음 산행은 무조건 설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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