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 지리산에 한 번 올라가자고 엄천골 사람들 사이에 의논들이 오가더니 마침내 맑은 날 택일하여 상봉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행은 백무동으로 이동하여 하동바위로 오릅니다. 한 30분 쯤 걸었을까요? 모두들 배가 고프다고 과일들을 깎아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세동아지매(사실상 할매입니다)를 눈여겨보니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마치 곱게 차려입고 장에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상봉까지 당일치기로 갔다 와야 하는데 멋쟁이구두는 좀 심했습니다. “야아야~~ 내는 지리산에 살면서도 지리산에 첨 올라가본다.”“아지매~ 지리산에 살면서 아직도 지리산에 안 올라가봤다는 기 말이되능교?”“지리산에 사는데 지리산에 와 올라가노... 지리산에 사는데...”“그라면 오늘은 우째 올라가능기요?” “오늘 안 가보면 죽을 때까지 못 가볼 거 같아서 한번 안 올라가보나...” 칠순을 벌써 넘기신 춘만이 어르신은 양말 속에 바짓가랑이를 잘 접어 넣고 시종일관 뒷짐지고 오르십니다. “아~~ 글씨~~반백년도 지난 이야기지라... 그때도 이리루 올라갔제..” “상봉에 올라갔는데 마참 비가 오는기라... 그래서 바우밑에 비를 피하는데...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이고 바람타고 옆으로 내리니 바위 밑에 숨어도 아무 소용이 없제... 날씨가 얼매나 추운지 덜덜 떨다가 얼어 죽겠다 싶어 비니루 뒤집어쓰고 냅따 뛰어 내려왔는기라... 얼매나 빨리 뛰었는지 한 시간 반 만에 뛰어 내려왔다 카이...”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상봉에서 한 시간 반 만에 우째 내려 오는교?”“그때는 그랬는기라... 열일곱 열여덟이었으니 날라 다녔는기라...”한 시간 남짓 걸었나 하는데 세동 아지매가 어디서 산신령에게나 어울릴 법한 지팡이를 구해왔습니다. 내가 가져온 등산용 스틱을 드렸더니 나무 지팡이가 더 좋다고 받지 않으십니다. ‘산신령님! 지팡이에 신통한 힘을 몰래 넣어주셔서... 지가 세동 할매를 업고 내려오거나 헬기를 부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그런데 버섯은 우째 세동아지매 눈에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서가던 세동 아지매는 수시로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포구(버섯)다~~”하고 외치십니다. 양손에는 큼지막한 표고버섯이 들려있습니다. “포구는 장마가 와야 되는 기라... 샛바람이 불어야 보이지라. 작대기로 요렇게 포구 따낸 자리를 탁탁 뚜디리 놓고 난중에 가보면 포구가 천지 빼까리로 나있능기라.” 세동 아지매 눈에는 노루궁둥이도 잘 보이는 모양입니다. 세동 아지매가 산신령 지팡이를 가리키며 “저어기~~ 노리궁디다~”하면 금세 세동 아저씨 손에 노루궁둥이가 들려있습니다. 엉? 노루를 사냥?ㅋㅋ 천만에요. 산행 중 사냥이라니요. 노루궁둥이 버섯입니다. 노루궁둥이 버섯은 생김새 때문에 지어진 이름인데 산삼보다 좋은 거랍니다.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나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고백컨데 헐떡거리고 올라간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 상봉에 서니 모두 희희낙락입니다.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하는데 아무도 내려갈 생각을 않습니다. “저어기가 엄천강이여... 조오기가 종근이 집이고. 저쯤이 우리 집인디 저 산이 가렸네.” 하도 내려갈 생각들을 안 하니 박털보가 걱정이 되는지 일행 중 손전등 챙겨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물어봅니다. 간단한 손전등이 2개 나옵니다. “선두에 하나 후미에 하나 켜고 내리 가면 되겄다.”하고는 상봉에 다시 못 올 사람 있으니 실컷 구경하고 내려 가자고들 합니다. 하지만 숲이 우거진 산은 일찍 어두워집니다. 어둡기 전에 내려가려고 일행을 재촉하는데 다들 느긋합니다. 온 길로 내려만 가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합니다. 어두워 못 내려가게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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