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도 지난 일이기에 이제는 웃으며 얘기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때 벌통을 매달았던 나뭇가지가 저절로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고백을 하자면 내가 실수로 부러뜨린 것이다. 나는 그 때 옷을 너무 껴입고 있었다. 머리에 망을 두른 것은 물론이고 벌에 쏘일까봐 긴팔 옷에 비옷을 하나 더 껴입고 두터운 가죽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하느라 비록 봄이었지만 긴장까지 하니 여름인양 땀이 났다. 그 와중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나를 수상하게 여긴 몇몇 호전적인 벌들의 공격이 있었고 그 중 한 마리는 내 겨드랑이까지 침투해 창을 박는데 성공했다. 벌에 쏘이면 보통 따끔하게 마련인데 그 때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짜릿했다. 살아있는 전선을 만진 듯 움찔하며 나도 모르게 나뭇가지에 매달린 통을 잡아당겨 가지를 부러뜨리고, 유인통도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이쯤에서는 내가 포기하고 도망갔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내동댕이쳐진 벌들은 이제 엄청 화가 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어보였다. 근데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 멀찌감치서 아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벌이 나에게 달려드는 걸 보고 아내는 도망가~ 어서 도망가~ 하고 소리치는데 나는 그 말대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열두 척의 전선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개미 똥꾸멍 만한 자존심이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내에게 쑥을 좀 꺾어 달라고 소리 치고는 벌들이 더 이상 내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옷을 단단히 여몄다. 상황은 나빠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긴장이 풀리고 되는대로 해보자는 여유까지 생겼다.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었기에 하다가 안되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성난 벌에게도 내 맘이 전해졌는지 벌들도 다시 감나무 고목에 다닥다닥 붙어 농성을 재개했다. 나는 아내가 꺾어준 쑥대를 빗자루처럼 만들어서 벌들을 살살 쓸어 유인통에 밀어 넣었다. 첨엔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더니 여왕벌이 통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첫 분봉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 드디어 내가 벌치기가 된 것이다. 읍에 있는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갈 때는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성공한 벌치기의 차는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 해 여름은 태풍 루사가 강타한 해였다. 태풍이 올라오기 전 일기예보를 들었지만 그게 그렇게 큰 놈 인줄은 몰랐다. 강 건너 마을 된장 만들어 밥먹는 이웃이랑 지리산에 올라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태풍이 올라오기 전에 얼른 다녀올 요량으로 우리가족 4명이랑 이웃가족 3명이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지리산으로 이사 왔으니 지리산 등반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침낭도 가족 수대로 장만하고 가볍고 성능 좋은 버너랑 코펠도 새로 장만했다. 내친 김에 등산복도 좀 폼 나는 걸로 장만했으면 더 보기 좋았을텐데 나는 그냥 후줄근한 여름 츄리닝을 입고 올라갔다. 초딩 아이들의 첫 등산이라 염려했는데 아이들이 오히려 더 잘 걸었다. 큰 아들이 앞장서서 길을 잡고 어른들이 헐떡거리며 따라 올라갔는데 물길을 따라 올라갈 때는 그런대로 재밌었다. 그런데 한신계곡 물길이 끝난 지점에서 세석까지 가파른 길은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든 돌길을 지나고 세석평전에 올라서자 다시 산행이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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