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첫봄을 보내며 우리 가족은 엄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지리산자락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집을 다 짓기도 전에 뒷산에 벌통을 놓고 벌을 치기 시작했는데, 시작 하자마자 분봉 철이 되었다. 분봉 철이 되면 벌치기는 하루 종일 분가하는 벌떼를 미리 준비해둔 새집으로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사철을 맞은 부동산 중계인마냥 연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이는 아직 중계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초보 벌치기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벌이 분봉할 때는 조짐이 있다. 일은 안하고 벌통주변에 모여 농성을 하는데 이는 평소에는 벌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다. 왕국을 둘로 쪼개는 중대사이기에 일군의 원로 벌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것이다. 대책회의에서는 척후벌들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왕을 언제 어디로 모실 것인지에 대해 붕붕거리고, 신왕을 모실 잔류파와 구왕을 모시고 집을 떠날 이주파로 무리를 나누는 것에 대해 붕붕거린다. 구왕을 따르는 무리들은 손 없는 날 척후벌의 안내에 따라 집단이주를 하게 되는데, 이들이 이주하는 곳은 대부분 벌치기가 사전에 준비해둔 임시거처가 된다. 벌치기는 이때 임시거처로 옮겨온 벌들을 새로운 집으로 옮겨 안정을 시키는데 만일 여왕벌이 새로운 집이 마음에 안들 경우엔 집을 버리고 가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벌치기는 여왕님이 새집 증후군 운운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도록 항상 친환경 자재로 만든 집을 준비해 두어야한다. 벌은 손 없는 날 해가 높은 곳에 떠 있을 때 이사를 하기 때문에 나는  분봉철 내내 도시락을 싸가지고 벌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어이~유주사~ 준비하시게~ 이제 곧 벌들이 나올 것이네~~> 벌 밭 옆에서 콩 농사를 짓고 있는 홍영감님이 곧 벌이 나올 거라고 열흘 째 장담을 하고 있었지만 첫 분봉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나는 기다리다 지쳤다. 홍영감님 말만 믿고 열흘 째 벌통 곁을 지켰는데,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벌들이 애만 태우고 안 나오는 것이다. 벌통을 200통이나 관리하고 있는 이웃 늦둥이네는 이미 분봉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벌은 나오지 않고 봄비가 이틀 내렸다. 보슬보슬 간지럽게 내리는 봄비가 아니라 여름비 같은 비가 쏟아졌다. 큰비가 왔기에 나는 벌 일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벌 밭 옆에서 고구마 순을 놓고 있었는데 구름 사이로 해가 잠시 나왔다. 두터운 구름을 비집고 해가 얼굴을 내민게 겨우 반시간이나 되었을까? 그리고는 다시 비가 부슬부슬 왔는데 , 잠시 해가 쨍하던 그 순간에 벌이 우루루 나왔다. 비 때문에 기다림의 끈을 놓고 있었는데 기습적으로 벌들이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나왔다나왔다 하며 혼자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벌들은 나오자마자 가까운 감나무 고목으로 몰려가 다닥다닥 붙기 시작했다. 벌은 내가 준비해둔 임시거처에 붙지 않고 감나무 고목에 붙더니 농성에 들어갔다. 나는 유인벌통을 하나 가져와서 농성중인 벌들 바로 위 가지에 매달았다. 그리고 벌들이 유인통으로 들어가도록 통을 바짝 들이밀고 벌들을 유인통으로 밀어부치는데, 제기랄~ 통을 매단 나뭇가지가 툭 부러져버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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