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해마다 6월이면 함양은 양파수확을 위해 몸살을 앓는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으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기일에 수확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꾼을 확보하는 것이 양파전쟁의 승리 요건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치열한 전쟁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래저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고 체력도 단련해야 한다. 그 전초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한 사건이 터졌다.
1모작 모내기를 위해 논을 장만해야 한다. 토양개선 밑거름을 뿌리라고 언제부터 어머니께서 성화를 부리셨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화요일이 되어서야 용기를 내었다. 어설프게 농사꾼 흉내를 내려니 무슨 일을 하려면 내 딴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경운기에 비료를 가득 싣고 삽으로 뿌리면서 논을 밟았다.
이제는 양수기로 물을 퍼야 한다. 마중물이라 했던가? 우선 물을 펌프에 부어야 한다. 그리고 전기를 연결하면 양수기가 물을 끌어 올려야 한다. 어찌된 일인지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양수기와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물을 붓고 또 붓고 돌리고 또 돌리고... 어설픈 농사꾼 흉내를 내는 나를 무시하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결국 어머니께서 이웃집 어른을 모셔오고, 한참을 보시더니 양수기가 고장이라 하신다. 겨울에 얼어 터진 것인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물이 새는 곳에 용접을 한 흔적이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분명히 새 것을 사다가 설치하셨다고 하셨는데.
문득 헌 것을 새 것이라고 사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판매한 사람이 어머니를 속인 것이다. 어머니가 헌 것을 살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새것을 훔쳐가고 헌 것을 가져다 둔 것이다. 분명하다. 가장 먼저 누가 그랬을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뾰족한 수는 없다, 고치든지 새것으로 교체하든지 해야 한다.
일단 수리부터 해보기로 했다. 깨진 부분을 교체하고 다시 시도를 하였으나 웬일인지 그래도 안된다. 이쯤 되면 시간이며, 땀이며 성질이 오를 때까지 오른다. 다시 함양읍으로 가서 새 것으로 사 올까? 수리하는 분에게 물으니 고치면 10년을 쓸 수가 있다고 한다. 결국 관정에서 물을 올리는 파이프를 교체해보기로 했다. 터지듯이 뿜어져 나오는 물이 참 반갑다. 고맙기도 하지. 차가운 물줄기가 마른 논을 적셔가기 시작하고 그것을 보니 마음이 괜히 흐뭇하다.
어머니 홀로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무거운 것을 끌고 버스를 타고 오고가고, 당일에 해결되기는 했을까?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이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면서 아려온다. 얼마나 억울한 일, 가슴 터지는 일들이 많았을까? 그 모진 세월을 견디기가 얼마나 많이 아프셨을까?
나를 위로하시면서 훔쳐간 도둑은 마음 안 편할 것이라고 하신다. 안되는 것에 미련두지 않으시고 빨리 털어버리셔야 함을 체득하고 계셨다. 원망하고 원통해 해봐야 나만 아프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목사가 어머니 송 집사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다.
주님의 은혜로 이 땀 흘리는 양파 전쟁을 잘 치르고 싶다. 마음의 화를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양수기에 처음 붓는 마중물,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퍼올리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버린다. 포기해야 한다. 내가 왜 어두운 곳 펌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느냐고 항변해서는 안된다. 나도 솟구쳐 오르는 물이 되겠다고 고집 부려서도 안된다. 잃고자 하면 얻고, 죽고자 하면 살고, 내려가고자 하면 올라온다. 결국 마중물이 많은 물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마중물은 들어가서 양수기의 마찰을 줄이는 윤할 작용을 한다. 자신을 부어서 기꺼이 들어가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수기는 열 받는다. 망가질 것이다. 마중물은 공기를 밀어내고 틈새를 메워야 한다. 그 공기가 다 빠지고 비로소 물이 터져 오른다.
마중물의 자세를 가지면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내가 살아서 마중물 됨을 버거워하니 한없이 작은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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