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함양에 삽니다.”“함안에 사세요?”“아니, 함양에 삽니다. 거창 옆에 있는 함양······.”“아, 함양.”대구에 사는 지인들은 내가 또박또박 ‘함양’이라고 해도 대부분 ‘함안’으로 알아들었다.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거창이라는 말을 데려와야 했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나름대로 대구지역 사람들은 함양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정작 그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까지 나도 함양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다. 세상일이란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듯 했다. 인연은 때가 되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을 있게 만들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함양에 살고 있었다. 함양에 터를 잡고 보니 주위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지리산 천왕봉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고, 아름다운 상림을 아무 때나 거닐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오래된 암자들이 많았다. 지인들에게 함양을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수필사랑 산악회’ 회원들에게 백암산을 산행하자고 제안 했다. ‘수필사랑’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수필가들의 문학회이다. 나름대로 꽃도 피고 바람도 선선한 오월의 주말을 선택하였다. 붉은 장미가 허벅지게 폈을 무렵 지인들이 행복마을에 왔다. 빈말인지 참말인지 모두의 입에서 화려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 정도는 새 발의 핍니다. 감탄사를 아껴두십시오.” 농담 같은 한마디를 던지고 백암산을 올랐다. 산행이 시작되었다. 은화살 같은 햇살이 머리위로 마구 쏟아졌다. 고요하던 숲속에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만 울리는가 싶더니, 숨어 있던 새들이 후두두 흩어지기도 했다. 곳곳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사리도 보였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 먼저 자리 잡는 것이 ‘고사리’라고 했다. 오래전 백암산은 소나무가 장관이었다. 하지만 큰 산불로 옛 모습이 사라졌다. 숲을 다시 자라게 한 것은 세월이었다. 육년 전, 처음 산을 올랐을 때는 나무들의 키가 내 허리까지도 오지 않았다. 지금은 나무들이 내 키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나무는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다행이었다. 그곳에 서로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가 작은 가방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가방인 듯 보인 것은 아이스박스였던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이글거리는 햇살 속에서, 그곳도 산 중턱에서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산행을 마치고 나의 집에서 간단히 차를 마셨다. 또 하나 더 자랑을 해야 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지리산 천왕봉’입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내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화사한 말들이 쏟아졌다. “감탄사를 아껴두십시오. 목이 아플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에 모두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정작 그것은 진담이었다. 상림으로 향했다. 합창을 하듯 모두의 입에서 커다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고, 소리 내 웃으며 서서히 이성을 잃어갔다. 도랑에는 물이 조랑조랑 흘렀다. 노랑 붓꽃이 피어 있었고 하얀 수련이 피어있었다. “이런 숲이 근처에 있다면 나는 매일매일 산책 할 텐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비록 매일매일 상림을 거닐지 않아도 그것을 근처에 두고 산다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전화기에 문자들이 쌓였다. 함양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문자였다. 내 어깨가 쓰윽 올라갔다. 이제는 지인들에게 만큼은 ‘함양’을 ‘함양’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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