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다 내 맘 같은가? 10년 이상 곶감농사를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지만, 매년 곶감농사는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터는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다음 해가 되면 실제로 그만 두기는 커녕, 곶감 덕장을 하나 더 짓는다든지 저온창고를 하나 들인다든지 투자를 더 하고 새로운 투지를 불태우곤 해왔다. 귀농하고 14년차가 되는 금년 4월에 나는 그동안 쓴 일기를 정리해서 책을 한권 내었는데 그 책은 아래 곶감 이야기로 시작된다. 농산물 판매비법을 공개합니다.내가 곶감쟁이가 된 것은 어째보면 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10년이 다되어가는 옛날이야기인데요, 그때는 벼농사, 알밤 농사, 고추, 고구마 등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밭작물에다 벌까지 치며 복합영농의 무거운 짐을 양어깨에 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산에서 알밤을 터느라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데 이웃마을 춘길이 어르신이 밤산에 오셨습니다. “허어~ 참 딱도 하네. 자네 이런 걸로는 네 식구 밥 먹기 힘들어. 그러지 말고 곶감 한번 깎아 보지 그래.” 하시는 겁니다. 그해부터 중국산 밤 때문에 수매가가 폭락해 안 그래도 알밤농사는 그만 두려던 참이었습니다. “정말 곶감 깎아 밥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니, “밥만 먹어? 이 사람아, 술도 한잔씩 할 수 있지.” 하시는 겁니다.허허 웃어 넘겼는데 술도 한잔씩 할 수 있다는 말이 뒷덜미를 꽉 잡고 며칠째 놓아주질 않는 겁니다. ‘곶감농사가 얼마나 재미있길래 술도 한잔씩 할 수 있다는 건가? 그게 정말이라면 어디 나도 한번... 흐흐 그래 술도 한잔씩...’그렇게 해서 그해 늦가을부터 춘길이 어르신과 같이 감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춘길이 어르신의 꼬임에 넘어가 여태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술은 무신 얼어 죽을...’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집니다만 곶감을 맛나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판로.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판로가 없으면 중간상인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겁니다. 하루는 경매장에 곶감 내러 가려고 챙기고 있는데 춘길이 어르신이 오셨습니다. “그래 곶감은 다 팔았나?” “다 팔기는요. 이제 시작인데요. 어르신은 많이 파셨어요?” 하니 놀랍게도 춘길이 어르신은 명절선물로 예약 받은 거까지 하면 거의 다 팔았다는 겁니다. 춘길이 어르신처럼 매년 손쉽게 곶감 파는 비결을 알아낼 요량으로, 그래서 술도 한잔씩 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을 속셈에서 술을 한상 올렸습니다. 술이래야 집에서 담근 다래술에다 안주래야 감말랭이지만요. 술을 사랑하는 어르신의 술잔에 소매 바람이 일도록 술을 따르고 난 뒤, 어르신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주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 거의 귓속말로 속삭이듯 곶감 파는 비결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은 기분 좋게 마신 술이 깰까봐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구름처럼 둥둥 떠서 재를 넘어가셨습니다. 전수받은 비법과 관련, 아내의 협조를 구하려다 쫓겨날 뻔 했던 춘길이 어르신의 곶감판매 비법은 딸을 여덟만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춘길이 어르신은 딸만 여덟 낳았는데 도시에 사는 딸들이 곶감을 거의 다 팔아준다는 것입니다. 출처 ‘반달곰도 웃긴 지리산 농부의 귀촌이야기’ 도서출판 맑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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