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이라 재작년 사월 초파일에 쓴 일기를 올리고, 곶감농사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꽃향기 넘치는 나른한 오후, 어딜 다녀가시는지 오늘따라 등구할매 걸음걸이가 힘들어 보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밭에 왔다 갔다 하실 때 지게도 지고 때론 제법 큰 나무 등걸도 땔감 한다고 끌고 다니셨는데 어디가 불편하신지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얼핏 보니 앞가슴에 뭘 가득 보듬고 내려가시는데 걸음이 왜 이리 느리신지...등구할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더라? 마당일 하다가 곶감 한 봉지 들고 따라 내려가 보니, 할머니가 가슴에 가득 보듬고 내려간 것은 뽕잎 순입니다.“뽕니파리가 참으로 몸에 좋은기라~~  내가 삶아서 먹기 좋게 해가지고 갖다 줄테니까 한번 먹어보소~~”“아이고 아닙니더~~ 저도 뽕닢이랑 다래 순이랑 묵나물 많이 만들어 났심더~~”뽕잎이 손톱 자라듯 조금씩 보이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한여름 날씨처럼 갑자기 더워진 요 며칠 새 이파리들이 아기 손바닥처럼 넓어졌습니다. 며칠 새 엄천골짝은 나물천지로 변해 할머니 나물 보따리엔 뽕잎 외에 다래순이랑 취나물이 가득 가득이고, 말동무가 생겨 신이 난 할머니 이야기보따리엔 엄천골로 시집오기 전 등구 마을에 살 때 산사람(빨치산)에게 양식 빼앗긴 드라마와, 옛날 옛적 영감님 살아계실 때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재밌었던 시트콤이랑, 지금은 모두 도시로 나간 자식들 이야기로 넘쳐납니다. 오늘은 첨 듣는 시트콤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머니의 스토리텔링에 심취해있는데 방해꾼이 생겼습니다. 방해꾼은 바로 닭장 밖으로 내쳐진 가엾은 관심장닭입니다. 이 녀석은 닭장 안에 있는 모범장닭 이랑 허구한 날 싸움질을 해대다가 닭장 밖으로 격리 당했다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분하여 시도 때도 없이 목청을 높인다 합니다.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이 녀석이 한번 ‘꼬끼요’하면 할머니도 잠시 말을 멈추십니다. 대화중에 머리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이 넘은 승질도 보통이 아닌지 할머니 엉덩이까지 쪼아대는 행패를 부린다고 합니다. 물론 관심장닭이 악의가 있어 그러는 거는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닭장 안에서 세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있는 모범장닭의 잘못도 아닐 거고요. 사연인즉슨, 작년 봄 면사무소에서 토종병아리 분양 보조 사업이 있을 때 할머니는 수평아리 하나 암 병아리 넷을 신청하셨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암 병아리 하나가 수탉으로 자라는 불상사가 발생한 겁니다. 한우리에 장닭(수탉) 하나 암탉 넷도 장닭으로서는 불만인데 장닭 둘에 암탉 셋이라니... 장닭 하나에 암탉 평균 일쩜 오마리씩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쩜을 쪼아먹고 열다섯 마리 정도씩은 되어야지. 최소한...) 관심장닭의 방해가 만만찮았지만 등구할매는 내 귀를 잡아당기며 더 크게 이야기를 하셨고, 이야기가 날이 저물도록 이어지자 나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빠이빠이 하고 그대로 달아났는데...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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