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뜰에 서른살이 조금 넘었음직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이사 온 지 20년이 가까이 되었을 때도 열매를 맺지 않아 숫나무 두 그루인 줄 알았는데 3년 전부터 그 중 한 나무에서 열매를 달기 시작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심은 듯한데 심을 때 암수 구별없이 그냥 심었을 터인데 절묘하게 두 나무가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다.
봄이 되어 잎이 피는가 했더니 벌써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가을에는 작고 유난히 노란 잎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나는 이 나무들이 오래도록 살면서 우리집이 부부은행나무집으로 불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함께 들어 있는 사랑과 감사의 달이기도 하다.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로 구성된 생활동동체인 동시에 집이라는 공간적 장소를 지칭한다. 모든 생활이 가정을 기초로 해서 시작되고 일상의 모든 노력은 대부분 가정을 위한 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느 가정에서나 하나씩 걸려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너무 흔해서 진정한 가치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만 삶을 가장 아름답고 윤택하게 해 주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요즈음처럼 가족끼리의 패륜(悖倫)이 극성스러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재산문제로 부부, 부자, 형제자매간 소송이 넘쳐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남매가 아버지를 없애려고 폭력을 가하고 어머니가 부추겼다는 뉴스에서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어머니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정말 가족 맞아?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가족의 의무를 한 사람도지지 않았으니...
자기 집에서 키우는 개도 맞고 들어오면 기분 나쁘다는 말이 있다. 가족은 개까지도 보호하고 감싸야 한다는 것이다. 절도죄 등에 적용되는 친족상도례는 가족끼리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규정이고 범인은닉죄에도 죄를 지은 가족의 도피를 돕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 법보다, 죄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할 가족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노인학대를 분석한 결과 아들딸이 학대한 비율이 56.3%라고 하니 효도 받는 것은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가정의 파괴는 사회에 나쁜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심각한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례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가족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서로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정은 정원과 같다. 정성을 다해 가꾸는 노력이 없이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없다. 가정에 존중, 사랑, 배려, 감사, 양보와 같은 밑거름을 많이 주어 모든 가정이 화목의 꽃으로 가득 채워진 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자애롭게 자녀를 키웠으며 효의 전통을 자랑으로 여기는 고장이다. 이 아름다운 전통이 훼손되지 않고 청정함으로 살아있기를 이 오월 가정의 달을 위해 기도하려 한다. 정성이 하늘에 닿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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