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등 뒤에 곰이야! 곰!곰!” 늦둥이가 소리치니 늦둥이 아부지는 장난인 줄 알고 “까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야단쳤다 한다. 박털보에게 들켜 도망갔던 그 곰은 며칠 뒤, 벌통 주변에서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던 동지골 늦둥이 아부지 등 뒤에 나타났다. 늦둥이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지 아부지한테 소리쳤는데, 그 아부지 첨에는 늦둥이가 장난치는 줄 알았단다. 까불지 말고 어서 집에 들어가서 숙제나 하라고 야단 쳤다는데 늦둥이가 계속 말을 안 듣길래 화를 내며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곰이 눈앞에 서 있더란다. 그 뒤 배꼽 잡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반달곰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귀농숙제 이야기로 돌아간다. 토종벌과 된장 숙제 베껴서 낸 거는 둘 다 F학점 먹고 나는 보기 좋게 쌍권총을 찼다. 토종벌은 관할권 다툼에서 밀려나 그랬다 치더라도 된장사업은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귀농 첫겨울에 우리부부는 된장을 담았다. 된장 맛있게 담그는 돌정지댁 할머니 도움을 받아 정성들여 2독을 담았는데 된장이 너무 맛있다며 놀러온 친지들이 된장 값을 넉넉히 쳐주고 다 퍼갔다. 아~ 시골에서는 이렇게 해서 돈 버는구나 싶어 다음해에는 된장을 큰독으로 8독 담았다. 메주콩 삶을 큰 가마솥도 3개로 늘리고 엄천 골짜기 콩은 있는 대로 다 사들였다. 이웃 집 빈 독도 사고 엄천골 집집마다 다니면서 빈 독을 사들였다. 된장 한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에 새로 사들인 빈 독의 숫자를 곱해보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수학시간이었다.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 때는 마을에서 놉을 구해서 기업의 형태를 갖추니 이제 대한민국 재래식된장 사업의 미래가 내 손안에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 담은 8독은 양이 얼마 안 되니 금방 동이 날 텐데, 좀 더 과감하게 독을 늘리지 못하고 신중하기만 한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사업은 빈 독이 구해지는 대로 착착 늘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덴장~ 이번 된장은 유감스럽게도 맛이 썼다. 큰 거 8독이나 담았는데...아깝긴 하지만 맛없는 된장을 팔수는 없는지라 몇 년을 끌어안고 혼자 먹다가 결국 모두 버리고 장독도 처분해버렸다.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된장을 잘 먹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몰랐었는데 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관심농부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나에게 계속 이거 해보라 저거 해보라고 권했다. 곰례댁은 알밤 산을 나에게 맡겼고, 서상댁은 논농사를 다섯 마지기나 권했다. 알밤 농사는 밤 수확 전에 예초기로 며칠 풀 베고 한 달 내내 산돼지와 경쟁적으로 밤을 주워 농협에 납품하는 것이 일인데, 허리만 아프고 별로 돈이 되지 않았다. 중국산 밤 때문에 수매가도 형편없었다. 재미없는 알밤농사는 3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논농사에 입문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때만해도 시골에 살면서 논농사를 짓지 않으면 진짜 농부로 쳐주지 않는 정서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 농부로 마을에서 인정도 받을 겸, 가정에서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위상도 세울 겸 서상댁이 빌려준 다섯 마지기 논에 벼농사를 시작했다. 왔다리 갔다리 하며 남이 짓는 농사를 지켜볼 때는 벼농사만큼 쉬운 게 없어 보였다. 봄에 모심으면 여름에 벼가 자라고 가을에 추수하면 되는데, 모내기도 추수도 이앙기 콤바인 등 기계가 다 해주니 벼농사는 몸 쓸 일이 없는 농사였다. 벼농사야 말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었고 나는 약간의 경험을 쌓은 뒤 마을 어르신들이 힘이 부쳐 못 부치는 논을 하나씩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