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요즘은 그 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러니 강산이 변하기까지 십년이란 시간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함양에 자리 잡은 지 햇수로 5년이 되었다. 이사를 와서 처음 본 것은 둥근 보름달이다. 그리고 하얀 달빛이 산천을 적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오려 할까. 밤이 캄캄하면 별도 많이 반짝거렸다. 초록빛을 가진 반딧불이도 허공을 날아다녔다. 지난 시절 잊어버리고 살던 것들이었다. 허나 지금은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반딧불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의 달빛도, 별빛도 찾아 볼 수 없다. 마을을 뒤덮었던 하얀 망초꽃 무리도 사라졌다. 나는 시골에 사는 것이 시들해졌다. 도시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대구로 가서 일 년 넘게 살다 작년에 다시 돌아왔다. 함양은 떠날 때와 또 다르게 변해 있었다. 수영장이 생겼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통 심신 수련법인 국선도가 종합복지관에 개설되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달빛을, 별빛을 잃어버렸어도 시골에서의 생활이 다시 즐거워 졌다. 특히 박물관은 내가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다. 여행을 하면 그 지역의 박물관을 꼭 둘러본다. 나의 전공도 문화재 ‘보존 처리’이다. 그 만큼 옛것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옛 물건을 집에다 소장하고 싶지는 않다. 성격상 관리도 잘 되지 않지만 쓸고 닦고 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시간 날 때 박물관에 가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한때는 박물관에서 일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젊은 날에는 박물관에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팔다 보니 지금의 세월이 되어 버렸다. 함양의 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가끔 문화재의 실물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숨겨질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일 년의 한번 쯤, 혹은 두 번이라도 개방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더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에 문화재가 있어도 관심이 없다. 더욱이 꼭꼭 숨겨져 있는 문화재에 잠시라도 마음이 머무르지 않는다. 어차피 볼 수 없는 것은 그 만큼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양 박물관에는 기증 유물이 많다. 기증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큰마음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그분들이 있어 나 같은 사람도 유물을 실컷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층 전시장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도유형문화재 제166호)를 비롯해 강익 개암문집 목판(도유형문화재 제167호), 용성세고책판(도유형문화재 제334호), 감재일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9호) 등이 있다. 모두 문중의 보물들이다. 또한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재들이다. 사실 고문서나 목판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읽기도 어렵고 뜻을 알기도 어렵다. 단순히 눈으로 보면 그저 오래된 책들이요 검은 먹칠을 한 나무판일 뿐이다. 유물은 다 그렇다. 녹이 쓴 철제가위, 숟가락, 흙으로 만든 그릇들, 항아리······, 아무리 봐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본다면 어떨까. 전생의 내가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면 또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문화재를 공부할 때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유적지에서, 단순한 유물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라. 그것이 문화재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그 말은 나의 눈을 바꾸어 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단순한 물건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꼭 역사적인 의미일 필요는 없었다.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을 쫓아 내 스스로 감동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것들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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