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연구소(소장 윤호진·한문학과 교수)는 지난 4월24일 진주 경상대학교 남명학관 남명홀에서 유교를 종교로 승화시켜 백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운동을 펼친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 선생의 사상과 학문을 재조명하는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경남지역 유림 및 합천이씨 문중, 병곡 송평마을노인회 회원, 김흥식 함양문화원장, 이지화 경남향교재단 사무국장, 이의호(전 김해 한림초등 교장), 정성용(전 함양제일고 교장), 이한규(진암 증손자)를 비롯한 직계 후손들이 참석했다.
경상대 정현섭 사회로 윤호진 남명연구소장 개회사에 이어 문중대표 이도한(진암공 후손)은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하신 모든 내빈들께 감사를 드리고 후손으로서 선조님 업적이 재조명 평가됨을 한없이 기쁘게 생각하며 주최해 주신 경상대 경남문화원 남명학연구소 관계자분들, 주제발표와 토론을 해 주실 교수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린다고 했다.오전 학술대회는 허권수(경상대 한문학과)교수가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의 생애(生涯)와 학문(學問)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 뒤 주제발표에는 권순철(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가 “진암 이병헌의 유학사상(儒學思想)에 대해”, 김동석(성균관대)교수가 “진암 이병헌의 심세(審勢)와 애국의식(愛國意識)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오후에는 허경진(연세대) 교수는 “이병헌 학문의 국제화 노력과 그 성과에 대해”, 김 준(중국 절강공상대) 교수는 “근대 동아시아 지적 토대의 형성에 대해”, 김영봉(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원은 “진암 이병헌의 시에 나타난 주제 의식과 문예미의 특질에 대해”, 이정희(경상대문천각) 사서는 “일제시기 경상지역의 공교(孔敎)운동 연구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마지막으로 강해수(일본 ICU대) 교수의 진행으로 정세현(일본 간사이대), 문정우(경상대), 강동욱(진주교육대), 김익재(경상대), 이영숙(경상대), 강혜종(연세대)씨가 종합토론을 가졌다.
경남 함양 병곡면 송평리 출신의 유학자 진암(眞庵) 이병헌(1870-1940)은 면우 곽종석의 제자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양의 종교와 문화 등에 밀려 유교가 급속도로 망해가고 전통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성장하여 유교를 복원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교를 종교화하여 공교(孔敎)라 하고 공자(孔子)를 교조(敎祖)로 삼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진암(眞庵)은 1919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산서당(경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에 문묘를 지어 공자를 향사하는 등 ‘공교운동’을 구체화했지만 시대변화에 무관심한 보수유림들의 강력한 반발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평생 공교운동(孔敎運動)에 헌신하였다.
중국을 5차례나 오가면서 변법자강운동으로 유명한 중국의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가 되어 깊은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 금문경학, 공양학 분야에 독보적 인물이 됐다. 그는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교라고 확신했고, 유교가 개혁을 통해서만 민족을 이끌 수 있고 전통문화를 지켜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유교의 종교화’를 꾀했다.
영국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 기증 소장되어 있는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은 진암 이병헌의 저술로서 경남 진주에서 간행한 석인본(石印本)으로 이병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아들 이재교(李在敎)가 재발행한 책으로 책안에 간직되어 있는 영문편지의 원문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저는 영국의 유교 연구자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공자를 섬겨 왔습니다.저는 예전부터 공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저는 유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비록 제가 유교를 공부하고 연구하기에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젊은이처럼새로운 마음으로 근면하게 남은 생 동안에도 노력할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영국 분들에게 유교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보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먼저, 부탁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추측건대 고대의 스승인 Pa Ran Alerck(?)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영국에 있을 것입니다.제게 그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 주신다면,그들에게 유교를 다룬 중요한 책몇 권을 다음에 보내드리겠습니다.이번에는 ‘易經今文考’(전체중 두 권)와 ‘儒敎同志文’을 보내드립니다.부디 받아 주십시오.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친애하는 마음을 담아.1959년6월5일
*추신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금문경학(今文經學)을 가르치는 학교가 영국에 있는지 궁금합니다.부디 다음편지에서 알려주십시오.
위의 편지는 아들 이재교(李在敎)가 아버지의 저술을 간행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유학 부흥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려고 쓴 것이 분명하다.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선생은 많은 유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인 학자였고 금문학을 도입하고 서양의 학문도 상당히 이해하였으며 당시 중국 사정이나 학계의 동향을 가장 잘 아는 학자로 학계는 주자학 일변도이던 우리나라 전통 유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독특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분야마다 더 깊이 연구할 가치가 크다고 보고 있다.
일제는 조선침략 후 전국적인 강력한 조직을 가진 유림들이 식민정책을 수행하는데 장애물이 되니까 유림계를 친일화 하기 위한 회유공작으로 1907년 3월 조직한 대동학회를 109년 10월10일 공자교로 개칭하여 유림단체를 그들의 지지 세력으로 친일화하기 위한 정치공작을 펼쳤다.
또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친일파 양성책으로 학식과 명망 있는 유력한 지식인(3,658명)에게 은사금과 관직을 부여 임시 은사금 8,246,800원(기초사업비)을 분배하고 유교확장의 구실로 기관지격인 대동학회월보(大東學會月報)를 발간하여 유림들을 친일부류로 동화시키기에 전력을 다했다.
경남지역에서 공자교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진주지역의 혜산(惠山) 이상규(李祥奎)가 건립한 도통사(道統詞)와 더불어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은 산청 단성의 배산서원(培山書院)을 복원 건립하여 공교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유교 지식인들 중 일제협력자가 있는 반면 은사금을 거절하고 독립운동에 힘쓴 애국지사들도 많았는데 의령의 유학자 수파(守破) 안효제(安孝濟)는 산중에 들어가 은사금을 거부하여 창녕경찰서에 투옥되었고, 경남 고성 서비(西屝) 최우순(崔宇淳)은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사립문을 서쪽으로 내고 호도 서비(西屝)라 하고 일본헌병이 가져 온 은사금을 거부하고 자결을 했다.
특히 혜산과 진암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일제의 유교 말살정책에 맞섰으며 유교복원과 유교부흥 운동을 통하여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집결하고자 하였다.
현재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생가 고택에는 이한규(증손)씨가 거주하고 있으며 함양 상림숲 인물 공원에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 선생의 흉상이 있다.
이번 춘계학술대회에 합천이씨 문중 이의호(전 김해 한림초등 교장)종친은 지역 유림, 특히 마산·창원향교 등에 초청장을 보내고 성공적인 행사를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다.<위 내용은 2015년 남명학연구소 춘계학술대회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 자료집에서 발췌>이정수 창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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