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와서 3달 만에 뚝딱 집을 짓고 이삿짐센터 컨테이너에 보관 중이던 살림을 옮기고 집들이를 했다. 차린 음식이라고 해봐야 국수와 막걸리가 다였지만 고맙게도 동네사람들 거의 다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축하해주었다. 그날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는 국수를 먹느냐 삼겹살을 먹느냐가 아니고, 우리가족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찌하여 어쩌자고 이런 산골마을로 내려왔느냐 하는 거와, 그리고 그러면 도대체 앞으로 이제부터 여기서 뭘 해 먹고 살 거냐 하는 두 가지였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두 가지 중 후자는 나도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해먹고 살건 지 이런 중요한 문제는 당연 사전에 심사숙고하여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내려왔어야 마땅한데 덜렁덜렁 내려온 내가 한심했다. 나는 숙제를 안 해온 학생이었고. 선생님이 이제 숙제 내놔라 하면 나는 제출할 공책이 없었다. 막상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나는 초조해졌다. 남의 걸 베껴서라도 숙제를 내야했다. 그 때 우리 동네에 토종벌을 치는 농가가 있었고, 강 건너 견불마을에 된장을 만들어 밥 먹고 사는 집이 있었다. 벌을 치는 집을 보니 아이가 셋인데 늦둥이까지 있는 걸보니 벌 쳐서 그런대로 밥은 먹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된장 집은 귀농해서 된장 담는 일을 시작한지 몇 해 안되었다는데 된장독을 계속 늘리는 게, 된장 담는 일이 밥벌이가 되니 그러지 안 되면 왜 그러겠나 싶었다. 내가 베껴 제출한 숙제는 이 두 가지. 나는 벌치는 집에서 벌통을 분양 받았고, 된장 집에 들락거리며 일도 거들고 공부도 했다. 그래서 첫 해 분양받은 토종벌 15통을 잘 키우니 벌이 새끼를 치고 분봉을 해서 매년 벌통이 두 배 세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꿀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꿀만 팔아도 우리 네 식구 먹고 살 만한데, 내가 담은 된장도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매년 독을 늘려 오히려 도시에서 살 때보다 훨씬 벌이가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는, 토종벌은 3년 만에 그만두고 된장사업은 2년 만에 망했다. 적어도 귀농하고 3년은 벌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토종벌 치는 일은 좀 더 잘 알아보고 신중하게 달려들었어야 했다. 벌치는 이웃이 늦둥이를 정말 먹고 살만해서 낳은 건지, 덜컥 들어서는 바람에 우짜겠노 하고 낳게 되었는지도 알아보고, 벌 농사의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도 조사를 했어야했다. 토종벌이 벌집에서 꿀을 모아오는 밀원과의 행동반경은 3키로 내외로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한 곳에서 벌통 숫자를 계속 늘릴 수가 없는데, 우리 집 주변은 당시 이미 이웃 집 벌들의 관할권이었다. 따라서 내가 뒤늦게 우리 집 뒤 언덕에 놓은 벌들의 영역은 이웃 집 벌들과 중복되어 시도 때도 없이 관할권 다툼이 벌어졌다. 한정된 밀원에서 벌끼리 서로 꿀을 따겠다고 싸우는데, 고백컨대 나는 우리 벌이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속으로 응원했다. 장마철에 꽃이 없을 때는 벌들이 서로 남의 벌통으로 몰려가서 꿀을 도둑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싸워서 될 일도 아니고 응원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밀원을 찾아 깊은 산으로 옮겨갈 수도 없는 것이, 벌통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관리가 되지 않았다. 외딴 곳에 둔 벌통은 기껏 꿀이 모이면 너구리가 몰래 와서 파먹고, 반달곰이 고맙습니다 하고 통째로 먹었다. 한 해는 우리 마을에 반달곰이 세 번이나 내려와서...(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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