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문을 넘는다. 암자에는 아무도 없다. 나와 투명한 봄 햇살과 훈훈한 바람뿐이다.  암자는 백운산 한 귀퉁이를 헐어지어졌다. 대웅전 왼쪽으로는 가파른 산자락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보인다. 그리 정갈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마음공부하기에 좋은 터라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 한 마리 허공에 떠 있다. 바람이 물고기를 흔든다.  “땡그렁” 풍경이 고요를 깨트린다. 바람과 물고기가 들려주는 염불소리다. 소리는 아무 일 없는 공간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울려 퍼진다. 오래전, 절집에서 부처님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머리를 깎은 비구니가 되고 싶었다. 부처님 그림을 그리며 마음공부만 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했다. 허나 스님이 말씀하셨다. “얼굴을 보니 머리 깎을 인연은 아니구나.” 그 말에 가슴 한구석이 ‘싸아’ 하니 아렸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절집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길지 않은 인연이었다. 가끔 예불을 올리고 부처님을 그리며 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검은 문고리를 잡고 대웅전 문을 연다. 법당 중앙에 목조로 조성된 아미타여래(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8호)가 좌정해 계신다. 극락정토를 관장하시는 분이다. 원래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좌우 협시인 두 분의 보살상은 소실되었다. 아미타여래의 복장에서 1674년(현종 15)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와 제작자, 그리고 조성에 소요된 물목과 시주자들을 알려주는 조성발원문이 나왔다.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뿐만 아니라 사원경제사 연구에도 매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또한 17세기 중·후반의 양식 및 시대적 특징을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어 조선후기 17세기 조각유파의 계승과 발전과 불상양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불상이라고 한다. 금빛의 부처님이 나를 굽어보신다. 엄숙하면서도 자비로워 보이는 상호다. 삼배를 올린다.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다짐을 하며 나를 낮춘다. 불가에서 죽기 전 아미타여래를 세 번만 부르면 극락에 갈수 있다 한다. 극락에 가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행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믿는 마음이 있다면 세 번이 아니라 매일 수천 번, 수만 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한 번도 부르기 어려운 법이다. 입으로만 부처님을 부르는 것은 입만 아플 뿐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공염불은 아무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이번만, 이일만 잘 풀린다면 ······”소원이 이루어져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무연히 법구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깨진 표주박으로 물을 뜰 수 없으니 쓸모가 없고 무상하다.우리의 몸도 병들고 늙으면 쓸데가 없다. 그러니 쓸모가 있을 더욱 소중히 써야 한다.그것이 무상함 속에 영원함을 담고 유한 속에 무한을 담는 길이다.건강함 속에 언젠가 늙어 죽어 가리라는 깨달음이 있으니, 한 순간의 삶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삶으로 확대된다.” 건강하고 쓸모가 있을 때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꼭 절집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 진리가 있고 만나는 사람이 모두 스승이다. 비록 머리를 깎고, 회색 옷을 입은 중이 되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 사이에서 마음공부를 하며 살아간다. 시루 속 콩나물처럼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된다면 아미타여래를 부르지 않아도 극락에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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