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나는 서울의 코엑스전시관에서 열리는 ‘2015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다녀왔다. 그곳에 전시된 생활디자인 제품들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꽉 다잡느라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칼 한 자루와 다구 몇 가지를 사들고 왔다. 며칠 전에도 나는 전주의 도자기 공방에 갔다가 접시를 비롯한 식기들을 구입하고 돌아왔다. 그릇들을 보면 자꾸 사게 되는 것은 내가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해서 아름다운 그릇에 담았을 때 내가 해놓은 음식이 입맛을 더 돋게 하는 것은 물론 음식도 그릇의 아름다움과 어울려 눈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릇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최근에 나는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혼자 좋아서 흠모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 소설 <신의 그릇>의 저자인 신한균 사기장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풀잎의 숨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가 우리나라 먹거리와 그릇에 맛을 더하기 위해 로산진을 내세워 펜을 들었다.” 신한균 사기장이 풀잎의 숨소리에도 귀 기울인다는 사람은 바로 박영봉선생이다. 함양출신의 시인인 선생은 2009년 초에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고 다음해 <로산진, 요리의 길을 묻다>는 책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자꾸 그릇을 사들이는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준 분이다. 요즘처럼 눈과 혀를 만족시키는 음식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은 맛있게 먹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나는 선생의 책에 푹 빠졌다. 선생이 함양 출신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첫 자장면은 연탄불 위에서 검게 끓고 있던 어머니의 자장면이다. 여러 가지 채소들이 돼지고기와 함께 그 검은 액체 속에서 어우러져 내던 향과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어머니를 졸라댔었다. 중학교 입학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갈아타는 돈암동 정류장 근처의 중국집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외식으로 처음 만난 자장면도 내 인생 안에 들어있다. 돈암동의 자장면 이후로 어머니가 해주시던 자장면은 순위에서 밀려나고 나는 중국집 자장면에 열광하는 시절을 보냈다. 그릇 이야기를 하다가 자장면 이야기는 무언가 하겠지만 배고프던 시절이어서 춘장 속에 버무려진 쫄깃한 면발이 플라스틱그릇이든 스테인리스그릇이든 중요하지 않아서 그릇을 신경 쓰지 않고 먹었었다. 그런데 박봉영선생의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의 서문에 자장면과 그릇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자장면에 열광하던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거기 서문의 첫 문장은 “혹시 요리의 슬픔에 대해 상상해 보셨는지 ......”다. 자장면을 먹다말고 젓가락을 놓았다. 오래도 사용했는지 피부마저 거칠어진 플라스틱 그릇을 손가락으로 퉁겨본다. 먹먹한 소리로 두어 번 턱턱거릴 뿐이다. 이내 향기마저 사라지고 후각이 싸늘해진다. 고이던 침마저 멋쩍어 씁쓰레하다. ‘허술한 앉은뱅이 식탁은 낡아야 한다. ...... 자장면 그릇은 거무스레하고 이가 두어 군데 빠져 있는 게 좋다’는 어느 분의 수필을 괜히 건드려 본다. 아아 다시는 맛있는 자장면을 그리워할 수는 없는 것일까?생각해본다.배고픔의 미학을 잃은 게지. 아니 감성의 미각을 잃어버린 건지도 ......기타오지 로산진은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토닥인다.아니야, 그것은 터널이었던 게지.다음엔 우리 사발을 들고 와 자장면을 담아 달라고 해야겠다. -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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