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일이다. 마당에서 정원 일을 하고 있는데 칠순에 가까운 노부부가 차를 몰고 우리 집을 불쑥 방문했다. 산청 어느 마을로 귀촌하려고 집을 짓고 있다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내가 귀농했다는 걸아시고 지나는 길에 들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집을 한번 둘러보시더니 대뜸 ‘젊어 보이는데 어디가 아파서 이런 시골에 들어왔느냐’고 물어보신다. 초면에 질문이 뜬금없었지만 건강문제로 시골로 내려온 사람이 많다는 걸 주변에서 많이 본 지라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내가 어디가 아픈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내한테도 비밀로 한  치질이 좀 있다고 고백해야하나 어쩌나 하고 있으니 노부부는 내가 우물쭈물하는 모양새가 뭔가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크게 바쁜 일이 있으신 듯 다시 차를 타셨다. 산청이면 이웃인데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라고 했는데 지나는 길에 잠시 들린 거고 또 가볼 데가 있다고 휑하니 가셨다. 짐작컨대 노부부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시골로 귀촌하면서 주변에 귀농귀촌한 사람들 사는 모습이 어떠한지 뭘 해서 밥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이집 저집 구경 다니는 것 같았다. 건강문제로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는 하다. 우리 마을만 해도 동지골 형님이 이십년 전 쯤 건강문제로 도시에서 내려온 걸로 알고 있고, 구시락재 노총각도 심장이 안 좋아 오지마을을 찾아 우리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수입이 꽤 좋은 영어동화전문서점을 시작한지 2년 만에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올 때 주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 크게 아픈 데가 없다면 저 친구가 왜 갑자기 지리산 골짝으로 내려가겠어? 물론 벌써부터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는 했지만 뭐가 그리 급해? 애들도 아직 초등학생인데...) 사실 영어동화전문서점은 재밌었고 수입도 좋았다. 우리 아이들 영어동화 읽어주려고 책을 사 모으다가 책에 빠져 책장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아내도 나도 타고난 책장수인 것처럼 책을 잘 팔았다. 인기작가 에릭 칼의 브라운베어나 배고픈 애벌레는 수만 권씩은 족히 팔았을 것이다. 그 때 영어동화가 붐이기도 했지만 아기 엄마들은 아내와 내가 영어동화를 구연하면서 권하면 백만 원 이백만 원하는 전집인데도 주저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렇게 한창 책장사로 재미 보다가 문득 이러다 사업이 규모가 커지고 돈 버는 재미에 빠지면 절대 귀농의 꿈은 이루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벌이도 좋지만 난 시골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 놀게 하고 정원도 가꾸고 마당에 개도 몇 마리 키우고 싶었다. 내 꿈은 그러했지만 나만 좋다고 바로 실행할 수는 없는 일이 이런 일이다. 내 인생의 절반은 아내꺼고 아내 인생의 절반은 내꺼라 부부의 합의는 필수. 사실 아내는 캐나다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 나를 여러 번 설득했다. 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 가서 잘 살 자신이 없어 반대했다. 어쨌든 아내도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것을 좋아해서 지리산 자락에 새집을 짓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땐 참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귀농관련 정보가 넘치고 지자체에서 체계적으로 귀농교육도 해주고 경제적인 지원도 해주지만, 그때만 해도 귀농은 이야기 꺼리였고 정보도 교육도 지원도 없었다. 면사무소에 가면 면 직원들조차도 빙글빙글 웃으며 ‘우째 이런 골짜기에 들어오셨습니까?’ 했다. 맨땅에 헤딩을 한 것인데, 하긴 그 때 이것저것 따지고 재고했으면 나는 지금도 도시에서 책장사 하고 있을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기에 내 인생의 절반을 초록으로 채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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