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매화가 하얀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꽃을 피울 시기에 내리는 비, 적절할 때 내리는 비를 ‘단비’라고도 불렀다. 달달한 물, 꽃을 피우는 식물에게, 싹을 키우는 식물에게 필요한 물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듯했다. 나도 단물이 마시고 싶었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났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아직 함양에는 내가 만나지 못한 석불이 있다. 바로 백연리 석조여래좌상이다. 여래는 함양고등학교 교정에 좌정해 계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비오는 날에도 부담이 갈수 있는 곳이었다. 함양중학교에도, 고등학교에도 불상이 있다니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 있어야 할 불상들이 왜 하필 교정에 자리 잡은 것일까. 정문을 지나 왼쪽 주자장이 있는 곳에 석조여래가 좌정해 있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라 추정되었다. 석불은 승안사지에 있는 불상이 떠올랐다. 느낌이 비슷했다. 상호는 마모가 심해 눈과 코를 시멘트로 되었다. 신체의 비례가 자연스럽지 못했으며 옷 주름도 선명하지 못했다. 손은 두상에 비해 작았으며 왼손이 파손되어 정확한 수인을 알 수가 없었다. 모습조차 온전하지 못했고 기교도 세련되지 못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살짝 불상을 만져보았다. 고려시대 누군가가 혹은 조선시대 누군가가, 지금의 나처럼 불상을 쓰다듬었을지 몰랐다. 몇 백 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나는 먼 과거의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비록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부처님일 것이다. 사람으로서 도저히 어쩌지 못할 때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초월적인 존재 밖에 없다. 나 또한 많은 의지를 하지 않았던가. 불상 가까이 있는 철망에 하얀 천 조각들이 묶여 있었다. 그것들이 바람에 팔랑팔랑 손짓을 했다.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소원이 적혀 있었다. 하나같이 ‘수능대박’이라는 글귀였다. 어떤 것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꼭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다짐도 적혀 있었다. 과연 대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의 소원이 고작 수능대박이라는 것에 조금은 씁쓸했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눈앞의 소원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빌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선생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무엇이냐?” 학생들의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의사가 되고 싶어 했고,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고 성공한 경영자가 되고 싶다했다. “왜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지?” 라는 질문에 모두의 대답이 같았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꿈과 돈이 같은 뜻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처음 불교를 접한 때가 20대 후반이다. 그때부터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나의 꿈도 돈을 떠나지 못했다.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문화재 수리기술자가 되던 해, 꿈의 첫 계단을 밟는다고 생각했다. 연봉으로 많은 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난치병에 걸렸다. 아픔의 시간은 시침처럼 느리게 흘렀다. 가진 돈을 모두 줘 버리고 안 아팠으면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돈은 모래알처럼 빠져 나갔다. 아픔을 겪으며 나는 살아온 것에 대해,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해 생각 했다. 지난 과거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직도 물질문명을 쫓으며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나의 소원은 바뀌었다. 세상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소원을 쓰는 천 조각이 있다면 그 문장을 쓰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회가 되면 자라나는 미래도 진정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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