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들과 함께 겨울 식재료 탐방이라는 명목으로 남해안을 돌았다. 썰렁한 녹차밭들, 바람이 매운 바닷가, 재래시장의 부산하던 술렁임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같이 온 것은 보성 득량면에서 나온 쪽파 한 단이었다. 굴도 있고 참다래도 있고 수많은 먹을거리들이 있었지만 나는 달랑 쪽파 한 단만 사서 들고 왔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그곳의 쪽파의 맛이 궁금해서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파 종류는 모두 좋아했다. 남들은 상추와 쑥갓을 겹쳐 올려 쌈을 쌀 때도 어린 나는 상추 위에 실파를 한 두 뿌리 얹어 쌈을 쌌다. 상추의 쌉스레한 맛에 실파의 매운맛이 더해지고 된장에 의해 구수한 맛으로 종결되는 그 쌈을 입이 미어지게 먹었었다. 대파는 대파대로 좋다. 고기를 구울 때도 굵게 썰어 같이 구우면 육류의 기름이 느끼하고 지겨워질 무렵 구운 대파의 맛과 향이 그 지루함과 느끼함을 없애준다. 국을 끓일 때도 찌개를 끓일 때도 나물을 무칠 때도 원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파를 넉넉히 넣는 편이다. 파에 대한 나의 애착은 아무리 바빠도 쪽파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쪽파를 다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번거롭고 성가시지만 김치를 담가놓고 보면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김치를 막 담갔을 때는 톡 쏘는 그 매운맛이 일상의 무료함을 일깨우는 맛으로 오고 푹 익었을 때의 쪽파김치는 매운맛은 사라지고 단맛이 깊어진다. 잘 익은 쪽파김치를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입에 넣으면 숟가락도 목으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밥을 부른다. 겨울이 제철인 굴전을 부칠 때도 나는 쪽파를 송송 썰어 계란을 푼 것에 넣고 부친다. 쪽파의 향이 굴의 비린내도 잡아주고 보기에도 좋다. 원산지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쪽파는 백합과의 식물이다. 아마 우리가 뿌리라고 알고 있는 비늘줄기가 백합과 비슷하기 때문인가 보다. 쪽파를 지속적으로 먹으면 혈관내의 콜레스테롤 함량을 줄이고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게 도와준다. 비타민 C와 비타민 A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피로를 빠르게 회복하게 하며 노화를 지연시키고 피부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 섬유질이 풍부하므로 다른 채소들과 마찬가지로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변비를 막아준다. 따뜻한 성질을 띠고 있는 쪽파는 인체를 따뜻하게 하므로 쪽파가 제철인 겨울에 제격이며 감기를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쪽파가 가진 독특한 향기 성분은 살균력을 지니고 있어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다. 음식을 할 때 쪽파는 잡냄새를 없애주므로 음식의 맛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익히는 음식에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게 하니 인위적인 감미료를 적게 쓸 수 있다. 남해의 바닷바람을 쐬고 돌아올 때 같이 온 쪽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무쳐 먹었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쪽파의 매운맛은 다 사라지고 오롯이 달기만 하니 고추장과 잘 어울린다. 먹고 남은 쪽파의 마지막은 김과 함께 무친다. 손질한 쪽파에 집에서 담근 간장을 미리 부었다가 쪽파에서 나온 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김과 함께 무치면 된다. 쪽파를 미리 간장에 절여 놓으면 쪽파에서 매운맛은 빠지고 김의 갯내음이 어우러져 맛이 제법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갯가에서 자란 남편이 잘 먹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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