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음식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 그 음식이 마치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아주 친숙한 것처럼 한순간에 다가오는 것이 있다. 아니면 먹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 갑자기 달려가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꼬막이 바로 그런 것이다. 바다와 먼 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지만 나는 꼬막 같은 조개는 밥상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꼬막을 조리하는 방법이나 먹는 법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낯선 식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처음 만난 꼬막을 장바구니에 넣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태백산맥이라는 대하소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출근을 해야 해서 늘 책을 끼고 다녔는데 태백산맥을 읽고 다닐 땐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원망스럽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태백산맥을 통해 만난 음식 중에 가장 강렬하게 오래 기억된 것은 갈치속젓이지만 내가 밥상에 올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구하기 쉽고 조리하기 쉬운 꼬막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제법 많은지 벌교에서는 태백산맥을 연계한 꼬막축제를 열고 있다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찬바람이 부는 11월이 되면 꼬막의 맛이 제법 들기 시작해 산란 직전인 봄까지 맛나다고 한다. 도시의 시장에서 흔하게 만나는 것은 수심이 꽤 깊은 곳에서 대량으로 양식되고 있는 새꼬막으로 참꼬막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도 떨어진다. 참꼬막은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는 곳에서 자라며 껍질의 골 모양이 기와의 골을 닮았다 하여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와옥자(瓦屋子)라 하였고, 김려의 <우해이어보>에서는 와농자(瓦壟子)라 불렀다. 참꼬막은 조개의 앞쪽을 열어 까먹지만 새꼬막은 뒤쪽에 숟가락을 대고 힘을 주어 까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똥꼬막이라 부른다니 재미있는 이름이다. 식물성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는 꼬막은 헤모글로빈이 풍부해서 빈혈의 예방이 되고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피로회복에 탁월한 식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든 조개들이 지나치게 끓이면 수분이 빠져 질겨지고 맛이 없지만 특히 꼬막은 아주 살짝만 익혀야 제 맛이 난다. 해감을 마치고 깨끗하게 씻은 꼬막을 겨우 잠길 정도의 끓는 물에 넣고 저어주면 꼬막들이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서너 개의 꼬막이 입을 벌리면 불을 끄고 체에 건져 재빨리 찬물에 담그지 말고 식혀야 껍질에서 살이 잘 떨어진다. 신선한 것은 잡내가 없지만 좀 더 풍미를 느끼고 싶다면 청주나 와인을 조금 넣고 데치면 된다. 살짝 데친 꼬막은 양푼 채 가져다 놓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그냥 까서 먹으면 꼬막 자체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다. 양념장을 만들어 얹는 수고를 더하면 밥과 잘 어울리니 밥상에서 대우를 받는다. 넉넉히 장을 봐왔다면 제철인 무와 쪽파 등과 함께 무쳐 한 접시 담아내면 술 한 잔 생각이 동하는 안주가 되니 긴 겨울밤을 같이 새울 친구를 부르고 싶어질 것이다. 꼬막을 먹으면서 꼬막축제를 생각하니 우리 함양에는 산삼축제와 물레방아축제가 있지만 꼬막처럼 대중적으로 흔하게 먹는 음식축제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무안만큼은 아니지만 함양의 양파도 제법 큰 생산지이니 이곳 함양에서도 양파 등과 같이 밥상에 쉽게 오르는 특산물로 축제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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