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님은 역대 왕들 중에서 어느 왕을 제일 좋아하세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다.” “으잉? 아니 그 많은 왕들 중에서 하필 고려 태조왕을 좋아하세요?” “태조 왕건은 정실부인을 6명, 후궁 23명 도합 29명의 부인을 두었으니 그 아니 부럽겠느냐, 흠흠”“오메나, 나, 참! 기가 막혀서. 선상님 취향 한번 고약하시네. 밝히기는 쯔쯧, 그러니 우리가 뭘 배우겠나” “내가 태조 왕건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고려라 이름 지었다. 지금부터 두 번에 걸쳐 고려를 단숨에 익히는 <핵심 간편 고려 연대기>를 정리하여 주겠다. (독자는 하늘이므로 존경어체로 바꾸어서) 고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호 해독처럼 절대적인 핵심 단어 몇 개가 있습니다. 이것만 알면 고려사 반은 아는 것과 같습니다. 1호족→ 2문벌귀족→ 3무신→ 4권문세족→ 5신진사대부→ 6신흥무인세력입니다. 1 호족 :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웠습니다.(918년/936년) 그러나 지방 곳곳에는 아직도 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지방 호족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조 왕건의 첫 임무는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고 각 지방 호족들로부터 충성맹세를 받아 통일된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었습니다. 왕건은 통합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백성의 지지를 위해서 세금을 감당할 만큼 정도껏 걷는 취민유도(取民有度)(1/10)정책을 썼고 지방호족에 대해서는 회유책으로 호족의 딸들과 결혼하여 장인관계를 맺는 결혼정책과 왕(王)씨 성(姓)을 내려주는 사성정책을 썼습니다. 견제책으로는 그 지방 유력 호족을 개경에 데려와 출신 지방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주는 사심관제도를 실시했습니다(예:경주지방 사심관 경순왕). 또 기인제도(其人制度)를 실시했습니다. 이는 호족의 자녀들을 개경에 오도록 하여 장학금을 주어 유명대학을 다니도록 하고 졸업을 하면 대기업에 취직을 시켜주는 즉 벼슬을 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줌으로서 호족의 자녀들이 서울에 머무르도록 하였는데 이는 지방호족들이 반역을 꾀할 수 없도록 자식을 볼모로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2 문벌귀족 : 성종 때 가서 어느 정도 나라의 기틀이 잡혀질 때 쯤 거란족이 쳐들어왔습니다.(993년) 1차 침입은 서희장군이, 2차는 양규장군이 3차는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장군이 격퇴시켰습니다. 또 여진족이 함경도 북방지역을 자주 침범하여 윤관장군이 별무반을 결성하여 진압하고(1104년) 동북9성을 쌓았다가 여진족에게 성을 돌려주는 회유책을 썼습니다. 송과 거란과 고려 삼국의 힘의 균형이 유지되면서 100여년간 고려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 문벌귀족시대가 되었습니다. 문벌귀족이란 가문(家門)+가문(家門=문벌(門閥), 귀족+귀족=문벌귀족 즉 재벌+재벌=대재벌이 되듯 두 귀족집안의 자녀들이 결혼을 함으로서 대 문벌귀족을 이루어 왕보다도 더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고려 초 이상한 문벌귀족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문벌귀족 집안으로는 경원 이(李)씨 이자겸, 경주 김(金)씨 김부식, 해주 최(凗)씨 최충, 파평 윤(尹)씨 윤관 등 8대 가문이 있습니다. 그 중 이자겸은 세 딸을 예종과 인종에게 왕비로 주어 왕의 외할아버지도 되고 장인어른도 되었으니 그의 권력은 하늘에 나는 새(왕)도 떨어뜨렸습니다.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 ‘십팔자위왕설’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이 되려다 발각되자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고(1126년) 땅의 기운이 다한 수도 개경을 버리고 서경으로 옮기자는 ‘묘청의 난’이 일어났으나(1135년) 김부식에 의해 1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천년 이래 최대의 사건이다.’고 평했습니다.    3 무신 :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문벌귀족사회의 모순이 지속되는 가운데 문신은 기고만장하여 무신을 개똥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김부식의 아들 22살의 김돈중이 노장군 정중부장군의 수염을 태우고, 문신 한뢰에게 무신 이소응이 따귀를 맞자 무신 정중부, 이의방 장군의 분노는 마침내 터졌습니다. 보현원에서 문신을 대량 학살합니다. 먹물이 들어간 문신 100여명을 모조리 처단하며 무신정변을 일으키고 하루아침에 무신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후 무신들간의 권력투쟁이 계속되어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지는 40년의 권력다툼에 이어 최충헌이 권력을 잡고 최씨 집안으로 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60여년 간의 최씨무신정권이 이어졌습니다. (다음 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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