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함양산삼. 함양지역 1세대 재배자이자 전국을 무대로 산양산삼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윤오 한국산양삼협회 중앙회장. 누구보다 앞서 산양산삼을 재배했으며,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다보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산양산삼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 회장을 만나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9월 마지막 날이었던 30일 오후 충북에서 열리고 있는 오송바이오산업엑스포 ‘2014 한국산양삼축제’ 현장에서 급하게 내려온 김 회장. 대내외적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제14회 지리산 천왕축제위원장까지 맡은 그는 남다른 지역 사랑과 산양산삼 사랑에 빠져 있다.
처음 산양산삼을 재배한 것이 2003년으로 이제 12년이 흘렀다. 당시 함양군의 특화사업으로 시작된 산양산삼 재배는 조금은 불투명한 사업이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 가난을 피하기 위해 산에 호두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도청 등지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향하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양산삼의 미래 발전 가능성을 인지하고 그가 가꾸어오던 임야에 산양삼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변의 우려도 엄청났다. 침엽수림에 산양삼을 심는 것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던 당시로서는 잣나무 아래 심은 산양삼을 보며 모두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산양삼은 활엽수가 울창하고 습기가 적당한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양삼을 심어 가꾸고 체계적인 식재 방법 등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그의 농원, 지리산 관광농원(윤오사슴농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주변의 시기 질투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오해도 많이 받고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 보다는 외부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 함양에서의 일 보다는 중앙무대에서 꿈을 키워보기로 했다. 그리고 2009년 산림청 산하 산양삼재배자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산양산삼을 생산하는 분들은 재배하는 것만 알았지 제대로 된 법 테두리 안에 놓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협회를 만들고 힘을 집약해 산양산삼의 법제화에 매달리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노력인지 지난 2011년 7월25일 정식으로 한국산양삼협회로 승격되어 산양삼의 생산에서부터 유통에까지 다양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산양삼협회가 창립한지 5년째다. 그는 초대 회장에 이어 2대 회장까지 역임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산양삼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중앙회장으로서 전국을 누비는 김윤오 회장이지만 고향 함양사랑으로 똘똘 뭉친 그의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그는 항상 함양 지역 발전과 얼마 남지 않은 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는 “함양 산양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국의 산양삼 판매망을 함양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인삼의 최대 판매지역인 금산의 경우 인삼 생산량은 5% 밖에 되지 않지만 판매망을 가지고 있어 인삼하면 금산으로 통합니다. 함양도 서둘러 이 같은 유통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함양 지역 이외의 강원도나 경북 등지에서 생산되는 산양삼의 문호를 개방해 함양지역에서 판매를 대행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20 산삼엑스포를 위해 관련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이를 총괄하는 단일 창구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요즘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뒤집어집니다. 엑스포를 위해서는 법인과 축제위원회, 행정, 그리고 CEO과정을 통합해 단일 창구를 만들어 추진동력을 얻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그 동안 잘못되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그가 지금 꾸미고 있는 관광농원, 즉 ‘지리산 관광농원’을 그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기부해 더욱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는 “지금 제가 열심히 가꾸고 있는 이곳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다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향후 이곳을 국가에 기부해 갈 곳 없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힐링타운’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미래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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