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발행된 잡지 <별건곤>에서는 가을에 먹는 풋김치에 대해 ‘고소한 품이 혀가 이 사이를 저절로 더듬으며 돌아다닐 만큼 맛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먹을거리들이 워낙 종류도 많고 귀한 것도 많고 멀리서 온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지만, 그래서 이른바 먹방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음식의 맛에 대한 표현이 아주 밋밋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혀가 이 사이를 저절로 더듬고 다닐 만큼 맛있다는 표현은 재미도 있거니와 어떤 맛이기에 그런 표현을 썼는지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때마침 우리 집의 손바닥만 한 밭에 일찍 심은 김장배추가 제법 자랐다. 대충 씨를 뿌린 까닭도 있지만 솎아먹는 배추의 맛에 재미 들려 넉넉히 심었기에 조금씩 자랄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솎아서 국도 끓여 먹고 무쳐서도 먹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솎음배추의 백미를 도라지와 함께 담가 먹는 김치라 생각한다.
도라지김치는 어느 날 혼자 생각하고 담가먹기 시작한 김치는 아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김치라 외가에나 가야 얻어먹던 것이었는데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친정어머니가 가끔 담가 주셔서 먹어 오던 김치다. 말씀은 없지만 어머니는 아마도 도라지김치를 담가 먹으면서 외할아버지를 추억하시는 눈치다. 농부였으나 선비의 모습을 하고 계셨던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농부는 우리의 스승이라고 한 사람의 말에 수긍이 간다. 자연을 읽고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통해 먹을거리를 생산하므로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기 때문에 그럴 것인데 외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추석이 지나고 집에 있는 식재료들을 정리하다가 곡성으로 귀농한 친구가 추석에 쓰라고 보내준 도라지를 보았다. 냉장고에 넣어두려다 할아버지와 도라지김치 생각이 나서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마침 마당에 솎을 수 있는 배추도 있으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도라지김치를 담근다.
한방에서는 도라지를 길경(桔梗)이라고 부른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약간 맵고 쓴맛을 가지고 있으며, 도라지 특유의 아린 맛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으니 그 독성은 우리 몸에서 아픈 것을 치료하거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약성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도라지를 약으로 쓰지 않고 평소에 밥상에 올리는 음식으로 쓸 때는 굵은 소금으로 빡빡 치댄 후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김치를 담근다. 폐의 기운을 좋게 하기 때문에 도라지는 폐의 기운이 부족하여 숨이 차거나 목이 아프거나 가슴과 옆구리에 오는 통증을 치료하는데 쓰는 식재료이면서 약재이기도 하다. 또한 기침을 멎게 하고 폐와 기관지에 생긴 염증을 치료하므로 목이 가래가 끓고 따끔거리고 아프면서 기침이 날 때 쓰는 약재이다.
그러나 꼭 몸에 탈이 났을 때에라야 도라지를 먹을 일은 아니다. 비빔밥에 도라지나물을 쓰고 명절이나 제사에나 도라지나물을 얹는 것 말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배와 함께 이슬로 내려 두고 마시면 좋을 것이고, 손이 좀 많이 가기는 하지만 마음먹고 어느 하루 시간을 내서 정과로 만들어 두고두고 간식으로 먹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도라지 가늘게 찢어 고춧가루로 붉게 물들여 얼갈이배추와 함께 김치로 담가 먹으면 <별건곤>의 가을 풋김치예찬론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혀가 이 사이를 누비는 김치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배추는 풋풋하고 고소하고 도라지는 아삭아삭 알싸한 맛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것쯤 일도 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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