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사(靈源寺) 도솔암은 마천면 삼정리에 위치한다. 그곳은 사명대사의 사형인 청매조사가 수행하고 열반한 도량이다. 흔적만 남아있던 터에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故) 혜암 스님이 창건했다. 혜암 스님이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수행할 때였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청오조사가 수행한 토굴 터가 보였다. 예순 살 되던 해 그곳에 도솔암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국립공원 측에서는 ‘산불의 위험이 있다, 산을 훼손한다’ 등의 이유로 암자 짓는 것을 반대했다. 몇 번 서류를 제출해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몇 년의 실랑이 끝에 암자를 지어도 좋다는 허가가 났다. 그렇게 어렵게 지어진 암자였다. 5월 중순, 지리산 도솔암을 찾아 나섰다. 자동차로 영원사 입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마침 산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얼른 인사를 한고 암자 가는 길을 물었다. 올라온 길을 조금 내려가면 우측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일 것이라 했다. 왔던 길을 조금 내려가니 도솔암으로 간다는 길이 보였다. 계곡을 건너 산길을 올랐다. 숲속은 온통 연두빛으로 가득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은화살처럼 내려 꽂이고 계곡물은 숲의 적막을 도랑도랑 흘러 보냈다. 눈앞에 암자의 입구가 보였다. 자그마한 텃밭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니 도솔암이란 현판이 걸린 법당이 눈에 들어왔다. 법당을 호위하듯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넉넉한 마당에는 푸른 햇살이 나직이 내려앉았다. 왼쪽 옆으로는 요사채인 삼소굴(三笑窟)이 자리했다. 신기하게도 도솔암은 막 봄물이 오르고 있었다. 하얀 작약이 살포시 봉오리를 열었고 뒤뜰에 자리한 복사꽃이 소담스런 자태로 잎사귀를 흔들었다. 멀리서 뻐꾹새가 꾹꾸 꾹꾸 목탁소리를 내며 산사를 더 적요롭게 만들었다. 세상의 걱정근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듯 했다. 착하게 산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극락중의 하나인 도솔천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목조관음보살(咸陽 兜率庵 木造觀音菩薩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504호)이 고요히 삼매에 잠겨있었다.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분이다. 108 배를 올리고 가부좌를 틀었다. 마음을 하단전에 모았다. “부처? 그거 다 우상이다.” 친구는 쉽게 말하고는 했다. 그럴 때는 그냥 웃어주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이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부처란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나는 부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다. 지금은 비록 미혹한 중생이지만 언젠가 나도 부처가 될 것이라 염원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실천 없는 믿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하는 소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렸다. 깜박 혼몽에 빠졌던 것일까. 눈이 번쩍 떠졌다. 실천이 없는 믿음? 어떤 실천을 하며 부처님을 믿어 왔는지 되짚어 보았다. 법당에 들어서면 소원을 위해 머리를 조아렸을 뿐이었다. 풀리지 않는 걱정이 있을 때마다 ‘관세음보살’이란 공염불만 했는지도 모른다. 관음보살님을 바라보았다. 어떤 실천을 해야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잠시 후 바람이 풍경을 때렸다. “땡그랑······” 풍경이 울었다. 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문득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큰 울음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것이 내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답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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