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숲속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또 갈아입었다. 채완이는 육학년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선긋기가 아니라 불화를 그렸다. 불화를 그리는 것은 힘들었다. 힘든 만큼 재미도 있었다. 잘 그려서 노스님께 칭찬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노스님은 좀처럼 칭찬을 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잘못을 해도 커다란 잘못처럼 잔소리를 했다. 노스님은 항상 말씀했다. “신심이 우러나야 좋은 불화를 그릴 수 있다.” 신심? 무슨 뜻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믿는 마음’이었다. 채완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신심, 신심”하고 속삭였다. 그렇게 속삭이면 신심이 우러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붓으로 색을 다루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달라졌다. 겨울방학이 되었다. “이 불화를 혼자 완성해 보아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요?” “중요한 불화다. 한 달 안에 마무리 하거라.” 오래전부터 혼자서 불화를 완성해 보고 싶었다. 두렵기도 했다. 마음을 모아서 붓을 들었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다보면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노스님이 따스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마음과 붓이 하나가 될 때 입속에는 침이 가득 고인단다. 그때 신심도 함께 붓 끝에서 칠해지는 법이지.” 약속한 날이 열흘 밖에 남지 않은 날이었다. 채완이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이 녀석 그렇게 게을러서야 좋은 불화를 그리겠느냐?” 노스님의 고함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게을러서 늦잠을 잔 것이 아닌데······. 새벽까지 불화를 그려서 그런 것인데.’ “법당에서 백팔배 참회를 하거라. 게으른 놈!”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노스님이 야속했다. 미운 마음을 씻어내지 못하고 붓을 들었다. ‘불화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어. 열심히 하면 뭐해. 매일잔소리만 듣고.’ 그때 노스님의 호통 소리가 귀를 때렸다. “이노옴,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리느냐?” 고함소리에 붓 끝을 보았다. 빨강색을 칠해야 하는 곳에 파란색이 칠해져 있었다. ‘큰일 났다! 중요한 불화라고 했는데.’ “잘못했습니다. 스님”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다. 처음부터 다시 그려라.” “네? 하지만 열흘 안으로 혼자서 완성할 수······.” “너의 잘못이니 열흘 밤을 새워서라도 혼자 마무리 하거라.” 채완은 관음보살님을 바라보며 절을 했다. 절을 하며 서러움을 토했다. 관세음보살님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분이었다. ‘관음보살님,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엄마!’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세월이 흘러가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땀방울이 뚝, 뚝, 법당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도 똑, 똑, 떨어졌다. 처마 밑에 걸린 풍경소리도 ‘뎅그랑 뎅그랑’ 울음을 우는 듯 했다. 그때였다. “엄마를 찾아봐.”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정말 엄마를 찾으러 갈까? 하지만 어디로?’ “어쩌면 아랫마을 사람이 엄마를 알고 있을지 몰라.” 또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래 아랫마을 사람 중에 분명 엄마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야.’ 관세음보살님이 마치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듯 보였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그동안 모아둔 용돈을 가방에 넣었다. 까만 밤하늘에는 매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계속)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