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쟁채쟁 챙챙∼. 꽹과리 소리가 시원하구나. 장구소리, 징소리도 들리네. 한바탕 벌어지는 사물놀이에 귀가 번쩍 뜨이네. 어깨가 저절로 덩실덩실 거리네. 어디 잔치라도 열린 것일까. 아니?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어. 아침까지도 조용했는데, 잠깐 졸은 사이 사람들이 모였구나. 그러고 보니 정월대보름날이네. 오라! 당산제를 지내려고 모여들었구나. 며칠 전 부터 몸에 새끼줄을 두르고, 사방에 황토를 놓는 걸 보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어젯밤 달이 구름 속에 있어 날짜를 깜박했네. 늙으니 기억도 깜박깜박하는구나.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 게지. 나이가 벌써 오백년을 넘었으니. 오래오래 살았다고 천연기념물 제407호라는 칭호도 주더군.그래, 처음 이곳에 심어진 해가 1474년(성종 5)이지. 그때가 김종직 선생이 함양 군수로 있던 시절이었지. 선생의 막내아들 목아(木兒)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죽고, 그해 여름에는 딸이, 가을에는 맏아들마저 죽고 말았지. 무슨 일을 한들 자식 잃은 슬픔이 사라질까……. 선생은 막내아들 목아를 잃은 심정을 시로 쓰고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스스로를 위로했지. 아직도 그 구절이 잊혀 지지 않는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어찌 이리 바삐 가느냐 다섯 살 생애가 전광석화 같구나 어머니는 손자를 부르고 아내는 자식을 부르니 이때야말로 천지가 아득하구나. 오백년을 넘게 살았으니 나도 볼 것, 못 볼 것 많이도 보았지.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보았지. 뒤돌아보면 삶이라는 것이 다 비슷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편리한 요즘 보다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어. 그때는 담도 낮고 대문도 필요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요즘은 높은 담과 대문에 서로를 못 믿는 시절이 되어버렸지. 하지만 서로 믿는 세상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으며 살 것이야.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내 덕담 한마디 하겠네. 옛말에도 이런 말이 있지. 선을 베풀면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하지 않더냐. 모두모두 착한 일을 많이 하며 행복하게 살자구나. 머리에 갓을 쓴 할아범도 보이고, 쪽진 할멈도 보이네.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허리를 숙이며 서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구나. 그래그래, 어여들 오너라, 어여들 와. 오곡밥은 먹었느냐. 오늘은 날씨도 좋아 해가지면 크고 둥근 보름달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산제가 시작되는구나. 어험! 자세를 바로하고 의젓하게 서 있어야지. 가지를 한번 흔들어서 반갑다는 표현도 해야겠구나. 자고로  좋으면 좋다는 표현을 해야 주는 놈도 좋고 받는 놈도 좋은 게지. 까치 녀석들아! 참새 녀석들아! 오늘은 큰소리로 우짖지 말고 재잘재잘 노래 불러다오. 녀석들에게 떡 고물이 떨어질 테니 신이 난 모양이네. 나도 거나하게 취할 수 있는 날이구나. 어디 막걸리 사발에 취해 보자. 아무 탈 없는 한 해가 되도록 내 성심을 다해 보겠네. 나만 노력해서 풍요로운 한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사람들아 우리 함께 노력하자꾸나. 자자! 지금은 떡도 먹고, 술도 마시고 따사로운 차도 한잔하게나. 얼시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구나! 노래도 불러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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