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도남 보다는 시골 순정남을 좋아하는 함양. 잘 지내셨나요? 함양이 청정 웰빙지역으로 알려지면서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귀농가구가 400세대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면단위 별로 귀농모임이 결성되어 정보를 공유하거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농촌생활의 꿈을 실현해 가는 사람들에게 함양군은 교육적으로 행정상으로 경제적으로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살펴서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서울신문에서 발표한 ‘귀농귀촌 2.0시대’를 살펴보면 70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귀농귀촌 2.0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합니다. 지난해에 전국적으로 2만 7008가구가 촌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엄청난 인구가 농촌으로 갔습니다. 농촌진흥청이 전국 524명의 귀농귀촌자에게 설문한 결과 2명 중 1명은 ‘농촌이 좋아서’(48.3%) 농촌행을 택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도시생활의 실패’가 이유가 된 사람은 8.4%로 10명 중 1명이 안되고. 10명 중 4명은 대졸(40.1%)이고. 1억원 이상 가진 사람이 절반(55.4%)을 넘었습니다. 즉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고학력·중산층 중심의 새바람으로 힐링. 무욕의 삶을 선택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양의 경우는 위의 통계나 경향과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함양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버리고 귀촌하여 함양 여기저기 좋은 곳곳에 집을 짓고 노후의 한가로운 자연생활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 귀촌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에서 새 출발하여 생계를 일구고 부농의 꿈을 이루려는 큰 뜻으로 농촌으로의 귀환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함양 농촌이 그만큼 젊어지고 있어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을 파고 흙을 일구며 피땀 흘려 젊어서 무엇인가 이루려는 계획된 귀농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건강한 농촌사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귀농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2년전 귀농한 40대 K는 성격이 급해 무슨 일이던 막무가내로 밀어 재낍니다. 아무리 농사의 지혜와 법칙을 가르쳐 줘도 듣지 않습니다. 그 땅은 경사가 급하고 그늘져 나쁘니 사지 말라 해도 무턱대고 사서 지금은 황무지로 변했습니다. 고랭지가 아니니 여름 배추를 심지 말라 해도 3번 4번 심다 망쳤습니다. 땅이 맞지 않아 양배추는 되지 않는다 해도 심었다가 상품이 되지 않아 폐기처분합니다. 감자는 그런대로 수확이 되어 납품했지만 중개상인의 상술로 판매대금이 감감 무소식입니다. 무 농사를 지으니 출하 며칠 전 태풍이 와서 싹 쓸어갔습니다. 종자 값에 인건비에 퇴비 농약비에 빚만 늘어 허우적거립니다. 주위 사람들 말을 잘 듣고 따라야 하는데 무조건 앞뒤 따지지 않고 욕심으로 덤벼든 결과였습니다. 처음엔 시골에 와서 식구와 먹고 살려고 참 고생이 많구나 하여 부지런한 노고와 열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어떤 충고나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다. 말을 들어야 이로운 말을 해주지요. 그래서 그의 별명은 불도저에서 독불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이 밑거름되어 틀림없이 부농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와 반대로 이 분은 시골이 좋아 아예 산속에 집을 짓고 트럭 타고 직장에 다닙니다. 얼마나 알뜰한지 두 내외는 오줌조차 버리지 않고 통에 받아 놓아 거름으로 씁니다. 식당에서 잔밥을 얻어와 닭도 키웁니다. 낮엔 직장 다니며 틈틈이 농사를 짓는데 부지런하기가 그지없어 안하는 농사가 없습니다. 개 닭 칠면조 고양이 키우지요. 봄엔 고사리 취나물 뜯어 팔지요. 감자 철에 감자 캐어 팔지요. 태양초 고추 말려 팔지요. 콩 길러 메주 만들어 팔지요. 김장배추 키워 절임배추 팔지요. 겨울철에는 1동 가까이 곶감 만들어 파니 보통 농사꾼이 아닙니다. 농사를 위해 태어난 부부 같아요. 돌산갓도 기르고 땅콩도 심고 심지어 자기 먹을 술이라고 조그만 항아리에 남은 밥에 누룩까지 넣어 막걸리를 만들어 먹으니 놀라운 사람입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에서 직장도 다니고 심심할 것 없이 농사도 짓고 쏠쏠하니 농사 부수입까지 생기니 이게 바로 귀농하여 사는 맛이라는 겁니다. 침을 흘리며 그 집을 쳐다보기만 합니다. 내가 도시를 떠나 함양 산골로 들어 온 지도 벌써 십년이 넘습니다. 수십 년 다니던 직장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무조건 산속으로 들어온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무식했다고 해야 하나 무식해서 용감했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온 귀농 초기. 그때 웃을 일이 참 많았지요. 일급비밀이지만 재밌는 귀농 에피소드 몇 개 공개해 볼까요? 제일 재미난 이야기는 마누라의 ‘앗! 나의 작은 실수!’입니다. 열심히 고추농사를 지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농사니 얼마나 재미있었겠습니까. 시골에서의 첫 수확인 만큼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라 심장이 뛰었습니다. 제법 많은 고추를 따서 태양초를 만든답시고 마당가에 널어놓았지요. 그랬더니 고추가 며칠 후 물컹물컹 문드러지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아줌마가 깔깔 웃으며 고추를 따면 먼저 햇빛에 널지 말고 그늘에 이삼일 놓아둔 후 숨이 죽으면 그때부터 햇빛에 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킨다는 말이지요. 그 이후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추가 그리 쉽게 마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흐린 날 빼고 나면 열흘이 넘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고추 속이 전부 곰팡이가 껴서 말리던 고추를 몽땅 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첫해 고추농사는 잘 키워 놓고 말리는 과정에서 허망하게 망쳤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나의 부인께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지은 고추농사가 망치게 된 것은 다 ‘앗! 나의 작은 실수’ 때문이었어요. 부디 용서해주세요.” 이 무슨 말인가? 나의 부인은 고추가 하도 오랫동안 마르지 않자 고추 속에 공기를 통하게 하면 빨리 잘 마를 거라는 기발 난 생각을 했습니다. 하여 송곳을 가지고 와 고추를 열 번씩 찔러 다 구멍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멍을 통하여 시원한 산들바람은 들어오지 않고 곰팡이만 들어와 고추 속은 곰팡이 소굴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핫!핫!핫! 어느 해인가 콩을 심은 적이 있습니다. 콩을 수확하여 밭 가운데에 비닐을 깔고 콩나락이 마를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경 쓰지 못한 콩나락이 낮엔 말랐다 밤엔 이슬 맞아 젖고 어떤 때는 비가 와서 흠뻑 젖고 소낙비에 다시 젖고... 또 나락 속의 콩알만을 모은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홍두깬지 도리깬지 자체를 몰랐던 우리는 그냥저냥 내버려두었고 한달 내내 타작이 되지 않자 콩은 이슬에 불었다 말랐다하며 강낭콩 크기도 되고 메주콩도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줌마가 기가 차다며 도리깨질을 하여 겨우 서너 되 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콩이 다시 문제였습니다. 밥상을 갖다 놓고 돌과 쭉정이는 버리고 좋은 콩을 가려내야 하는데 콩 한알 한알 가리는 이 작업이 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술 먹기에 바쁘고 농사에는 참으로 게을렀던 우리는 결국 한 겨울이 끝나기까지 콩과의 전쟁을 하여 콩 넛 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콩은 참으로 귀한 알콩달콩이었습니다. 밭을 열심히 갈아 거름과 퇴비를 많이 하여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한철이 지나고 고구마를 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고구마가 타조알이었습니다. 울퉁불퉁 짱구공이었습니다. 럭비공으로 굴러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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